며칠 전 시골집을 찾았을 때 아버지는 사랑방서 왕골자리를 매고 계셨다. 어릴 적부터 보아왔던 우리 집의 겨울풍경이다. 가을걷이를 끝내고 겨울이 깊어지기 시작하면 아버지는 헛간에 말려두었던 부들이며 왕골을 꺼내 손질을 하고 날씬한 대궁을 골라 자리틀에 얹혔다.
손님이 와도 그 자리틀 앞에서 만났고 자식들에게 할 얘기가 있어 부를 때도 그 자리였다. 얄팍한 조각들이 쌓이고 엮여 한 폭의 자리가 될 때까지 아버지는 늘 그 곳이 당신의 위치였다. 변함없는 모습으로 늘 그 곳에 지금까지도 계시는 분이 아버지다. 올 겨울도 어김없이 아버지는 자리를 매고 계셨다.
아버지의 변함없는 모습에 갑갑증을 느낀 적도 있었다. 수시로 변하는 도시와 달리 고정돼 있는 주변 풍경들도 답답했다. 그것들은 한 때의 내 생각에서 후퇴였고 후진이었으며 낙오였다. 소외였고 열등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버지의 변함없는 모습이 나에게는 힘이다.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의 ‘올곧은 자리 지킴’이 더욱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당신이 그곳에 있기에 나는 언제고 돌아갈 곳이 있다. 이 일 저 일로 지치고 힘들 때 돌아갈 그 곳을 생각하면 마음 든든하다. 이룩한 것들로 자랑스러울 때, 거둔 것들로 뿌듯할 때도 돌아가고 싶어 가슴이 뛴다.
그곳은 고향이다. 아버지가 겨울을 나며 자리를 매고 계신 곳이 바로 고향이다.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것은 살면서 힘이 된다. 반겨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더 큰 축복이다.
요즘을 살고 있는 사람들 중 맘 놓고 돌아갈 고향이 있는 사람들은 드물다. 고향이 있어도 돌아가고 싶은 곳이 아니다. 고향을 버렸거나 잃었다. 그걸 챙겨볼 여유도 없이 살다보니 어느 순간 고향도 변했다.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들은 예전과 다르다. 이웃도 달라져 있고 형제자매들까지도 달라졌다. 오랜만에 찾았을 때 그런 변화가 당황스럽고 섭섭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인심도 모양도 모두 변한다. 고향이라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는 없다. 내가 챙겨보지 못하는 사이에 모두들 변한다.
돌아갈 고향을 생각한다면 미리미리 챙겨두어야 한다. 때때로 찾아 변하는 것들도 익혀두고 달라지는 인심도 익숙해져야 한다. 그래 놓아야 내가 지칠 때 맘 편히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이 된다. 반겨주는 고향이 된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미리미리 챙겨두는 것이 좋다.
김경래 리포터 oksigol@oksig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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