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의 현금인출과 강제집행면탈

지역내일 2013-10-04

강제집행을 당할 위기에 처한 사람이 은행의 예금을 모두 인출하여 현금화한 경우에 채권자는 강제집행할 기회를 잃게 된다.

금전을 집에 보관하고 있다면 직접 현금을 압류하여 집행하면 된다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현실을 무시한 주장이다. 집안에 있는 현금을 찾아 압류하는 것보다 은행의 예금을 압류하는 것이 더 쉬운 방법이다. 금전의 경우 소비하기 쉽고 보관 장소도 밝혀내기 어려워 금전에 대하여 가압류나 강제집행을 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채무자가 유일한 재산인 부동산을 매각하여 소비하기 쉬운 금전으로 바꾸는 행위를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해행위로 인정하고 있고, 채무자가 상당한 이유 없이 다액의 예금을 인출하거나 소유 부동산을 담보로 금원을 대출받아 차명 계좌나 현금으로 보관하면서 그 사용처나 보관 장소를 밝히지 아니한 행위 또한 강제집행면탈죄에서 정한 은닉에 해당한다.

찾은 돈 중에서 생활비 등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정상적으로 인출한 것이 있을 수 있다. 이 경우에는 강제집행을 면탈할 목적으로 인출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실제 이러한 주장을 한 사건이 있었다.

위 사건에서는 재산이 8억 원 정도를 가지고 있던 남편을 상대로 처가 위자료 및 재산분할 청구를 한 것인데, 남편이 은행예금 1억 원을 인출하고, 부동산을 담보로 3억 원을 대출받아 이를 현금으로 숨기는 바람에 실제 4억 원만이 재산으로 남아있었다. 처가 남편을 강제집행면탈로 고소하였고 남편은 생활비 등을 사용하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예금을 인출하고 대출받은 것으로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하였다. 

형법에서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는 정당행위로 처벌하지 않지만 4억원이나 되는 거액의 돈을 일시에 현금으로 찾아 보관한 행위는 생활비 등 필요한 자금을 초과하는 것이므로 정당행위라고 보기 어렵다. 법은 상식의 범위 내에서 생각해야 한다. 

“내가 내 돈을 은행 예금으로 보관하던지 현금으로 찾아서 집에 보관하던지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현금을 갑자기 인출한 의도는 강제집행을 어렵게 하려는 의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정말 피치 못할 정당한 사유가 있다면 강제집행 면탈의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증거를 대야 할 것이다. 

이재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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