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 속에 집은 아직도 이리 아득하다. 오십을 넘긴 나이를 살면서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오롯이 떠오르는 집. 나이가 들어갈수록 옛집은 더 큰 그리움이 된다.
그곳에는 아버지가 지게 가득히 풀짐을 내리던 너른 마당이 있고 어머니가 웅크리고 앉아 콩을 까던 뜨락도 있다. 이맘때면 편지처럼 날아들던 낙엽에서 바스락 소리가 났다. 새벽 무렵엔 서리가 어름보숭이같이 내렸다. 부엌 뒷벽을 가득 메우고 있던 장작더미에 햇살 꼬리가 길어지면 얇아지는 볕의 두께가 아쉬웠다.
텃밭에 알 밴 배추를 따고 무를 뽑아 집안 여자들이 수돗가에 모여 김치를 담그는 것도 이맘 때 일이다. 인절미처럼 보드랍게 절여 놓은 배추 속살에 고춧가루가 버무려지고, 한쪽에서는 남자들이 돼지고기를 삶고 비릿하게 굴을 씻어 보쌈을 만들었다. 김이 나는 돼지고기 한 절음에 소주가 곁들여 지면 아버지는 정선아리랑을 흥얼거렸고 이내 따라서던 어머님의 잔소리. 그 사이사이 뒷마당에 묻은 단지 가득 양념된 배추며 무가 차곡차곡 쌓였다.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시작되는 풍경이었다. 문을 걸어두고 속으로만 웅크려 살아내야 할 날들의 시작이었다.
겨울은 이내 무척이나 깊어졌다. 눈은 추녀까지 내려 집을 덮고 산과 들판은 온통 흰색 일색이었다. 시냇물은 얼어 물소리를 잃은 지 오래고 간간이 밭은기침 같은 바람소리를 냈다. 내 고향 정선의 겨울은 그렇게 시작되고 깊어갔다.
어제 택배 기사가 스티로폼 박스 두 개를 들고 아파트 현관문을 두드렸다. 고향에서 어머님이 보낸 김치박스였다. 비닐봉지를 열자 꼭꼭 눌러 담은 고향 가족들의 정성과 사랑이 코끝을 아려온다. 늘 돌아가고 싶은 고향이 그렇게 아파트 거실 가득 펼쳐졌다.
소를 먹이던 언덕에 집을 짓고 어머니가 정성을 들이던 장독대를 양지바른 곳에 만들고 싶다. 채송화는 하얀 자갈이 깔린 뜰아래에 어울렸다. 그렇게 꽃을 심고 노랗게 무리를 짓던 삼잎국화도 울타리를 따라 가꾸고 싶다. 늦은 가을날 감국차를 담그고 김장을 하던 아내가 그린 듯 졸고 있을 때, 도시 경쟁에 지쳐 살던 아이들이 찾아와 늦잠을 자는 아침에 나는 등떼기에 김이 모락모락 나도록 장작을 패고 싶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벽을 따라 차곡차곡 그것들을 쌓고 싶다.
김경래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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