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지식정보산업진흥원(원장 김인환)이 주최한 고양스마트영화제가 지난 9월 27~28일 아람누리 새라새극장에서 열렸다. 이번에 3회째를 맞은 고양스마트영화제는 본선에 오른 37개 작품 상영과 감독들의 제작에 얽힌 뒷얘기, 또 ‘워낭소리’의 이충렬 감독과 영화 ‘말아톤’의 정윤철 감독의 토크쇼로 진행됐다. 특히 이번 영화제는 지난해에 비해 출품작이 늘어나 메이드 인 고양 부문과 원테이크 영상부문에서 모두 81편이 경합을 벌였고 질적인 면에서도 상당한 수준에 이른 작품들이 많아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는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받았다.
이번 수상작 중에서 ‘메이드 인 고양’ 부문 대상작인 송예진 감독의 ‘행주, 마지막 어부’는 행주나루 어촌계 어부들의 일상과 애환을 잔잔하게 그려 단연 눈길을 끌었다. “영상을 통한 창작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있었고, 오랜 꿈이기도 했어요. 이번 수상을 계기로 영화제작이라는 작업에 오래 머무를 것 같습니다”라는 그를 만났다.
현대사회의 상징적 의미인 도시에도 어부가 있다는 것 알리고 싶어
“행주나루에는 서른세 명의 어부들이 있다. 도시화 산업화로 한강이 개발되고, 인천 서해바다의 물길이 좁아지면서 이들은 한강하구의 마지막 어부가 될지도 모른다.”
‘행주, 마지막 어부’의 인트로는 이렇게 시작되면서 카메라는 행주나루 4대째 어부인 김영선 씨를 비롯한 어부들의 일상을 쫒아간다. 김영선 씨는 3대 어부 조선순 씨의 사위로 처음엔 행주나루에서 잡은 고기를 판매하는 일을 하다 행주나루 어부가 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양시 하면 아파트 숲으로 둘러싸인 일산신도시를 먼저 떠올리게 될 터. 우리와 아주 가까운 그곳 행주나루에 어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그래서 송예진 씨는 현대사회의 상징적 의미인 도시에도 어부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예전 행주나루는 겸재 정선의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 19폭의 그림 중 행호관어도에 그려졌듯 모래섬과 행주나루 사이에 웅어(위어)를 잡는 어선이 어우러진 풍광이 빼어난 곳이었다. 음력 4월 말이면 행주나루에 온통 웅어잡이 배로 가득했고 웅어는 임금께 올리는 가장 중요한 진상품이었다. 그런 행호(예전 고양사람들이 한강을 부르던 말)의 풍어는 이제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송예진 씨는 “행주나루 어부들은 인천 물때에 맞춰 조업활동을 하고 만조와 간조시간에 따라 조업 시간도 달라집니다. 물때는 보름주기로 바뀌며 인천앞바다의 밀물이 김포, 강화를 거쳐 김포대교 하류 신곡수중보에 들어오기까지는 약 한 시간이 소요된다고 해요. 어부들은 밀물이 밀고 들어오는 이 세 시간 동안 실뱀장어를 잡아 생활하고 있어요. 겨울철에는 숭어잡이를 하고요. 하지만 최근에는 행주나루 어부로만으로는 생활이 되지 않아 다른 일을 하면서 고기를 잡는 경우가 대부분이죠”라고 안타까워한다. “3대 어부 조선순 씨만 해도 고기잡이로 1남 5녀를 다 길렀을 정도로 수입이 봉급생활자보다 나았다고 해요. 하지만 지금은 어획량이 줄어 생활이 안 되니 이 일을 이어갈 사람이 있을까요?” 이런 상황이니 수백 년 전부터 내려오던 행주나루 어부의 풍경은 이제 곧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런 안타까움을 그는 다큐 엔딩에서 이렇게 토로했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외동 행주나루를 찾은 지난 두 달, 나는 보았습니다.
강이 말없이 내주는 푸른 살점을. 그게 내가 행주나루에 간 이유입니다.”
다큐작업 중 현천동 폐비닐 야적장 화재로 한강오염 현장 목격, 환경의 중요성 깨달아
“그동안 글로, 또 사진으로 나를 표현하는 작업을 해왔지만 영상은 또 다른 매력이 있네요. 다큐는 고양영상미디어센터에서 VJ과정을 배우면서 흥미를 갖게 됐어요”라는 그는 사실 오랫동안 기자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결혼 전부터 잡지사 기자로 근무했었고 1991년 고양시에 터전을 잡으면서 ‘월간 피플’의 편집장 등 고양시의 오피니언 리더로 활발하게 활동해왔다. 잡지사 기자 시절에도 잠입 르포를 쓰는데 흥미를 느꼈다는 그는 여려 보이는 외모와 달리 사회 곳곳의 어두운 곳을 찾아다니며 발로 뛰는 기사가 적성에 맞았다고. 당시 지피족이라 불리던 서울역 지하철 노숙자를 취재하기 위해 그들과 함께 노숙하다시피 한 적도 있을 정도로 사회적인 이슈에 관심이 많다.
“이번 작업은 어부들의 일상을 찍어야 했기 때문에 배도 같이 타야했어요. 그런데 예부터 배에 여자를 태우는 것을 꺼리잖아요. 이번 다큐는 그런 거부감을 없애고 그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그들의 어려움을 많이 들으려 노력했고 촬영이 아니라도 같이 많은 시간을 가지려 애썼어요. 그런 신뢰를 얻지 못했다면 아마 촬영이 힘들었겠지요.” 그런 노력 덕분에 지금도 어부들과는 어려움을 털어놓을 정도로 친한 사이라고 웃는다.
이번 다큐를 찍으면서 잊을 수 없는 사건도 있었다. 다큐를 찍던 지난 4월 20일 현천동 폐비닐 야적장의 화재로 한강에 검은 오염물질이 떠내려 온 것. 연락을 받고 달려간 그는 오염된 현장을 유일하게 촬영했고 그 영상을 모 케이블 방송사에 제공해 그 심각성을 세상에 알리기도 했다.
“이번 작품을 찍고 보니 자꾸 욕심이 생겨요. 영상제작이 하나의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그 속에 음악 미술 편집 등 다양한 예술장르가 필요한 작업이잖아요. 감독들이 자신의 영화에 맞는 음악 하나를 쓰기 위해 직접 작곡을 배워 곡을 만든다는 것이 이해가 돼요. 저도 영상의 인트로와 엔딩에 저만의 멋진 글씨체를 넣기 위해 요즘 캘리그라피를 배우고 있어요.” 요즘 그는 ‘행주, 마지막 어부’를 장편다큐로 준비 중이고, 한국전쟁 당시 포로로 잡혔던 그의 아버지 이야기를 담아내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인터뷰가 끝나자 촬영을 위해 다시 장비를 둘러메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송예진 씨.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곧 또 다른 낭보로 다시 만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난숙 리포터 success6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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