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와 제게 두 가지 행복이 생겼습니다.
가르치는 일은 본질적으로 늘 행복하지만, 그것이 오롯해질 때가 더러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편, 학생이 되어 뭔가를 배울 때입니다.
연초부터 저는 고마운 인연의 덕으로 차(茶)와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국어와 독서를 가르치고, 글 쓰고, 글 읽는 일을 업(業)이라고 생각하고 살며, 숭문(崇文)의 영역 밖에서 진득하게 뭔가를 추구해 본 바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것들이 주는 쾌락이 본업의 그것에 비견할 바가 못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올해 들어 저는 차와 사진을 배우며 행복했고, 그 행복은 오늘도 진행 중입니다.
배우는 일도 본질적으로 행복한 법입니다. 제 행복은 그냥 행복이 아니고 날로 달로 배가되는 행복입니다. 그것은 순전히 제게 가르침을 주시는 선생님들 덕분입니다. 저는 그걸 자랑하고 싶어서 몇 달 전부터 마음이 들떠 왔는데, 그걸 자랑하지 않고 마음에 꼭꼭 담아두고 꾹꾹 참으며 세월을 보내자니, 어떤 특별한 참는 일에는 쾌감이 뒤따른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저금통장에 잔고가 쌓여가고 하루하루 이자마저 불어가는 걸 바라보는 든든함 같은 거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제 이자가 부는 재미보다는 통장을 깨서 ''정승처럼 쓰는'' 쾌감을 만끽할 생각인데요, 괜찮겠지요?
제가 요즘 사진을 배우는 분은 육명심 선생님이십니다. 선생님의 함자를 글에 올려놓고 나니 슬그머니 송구한 생각부터 먼저 듭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내 스승 플라톤은 너무나 훌륭한 분이다. 그 분을 칭송하는 일도 아무나 해서는 아니 된다. 플라톤을 칭송할 자격이 있는 자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라고 했습니다. 지금 제 심정도 여기서 멀지 않습니다. 저는 많이 조심스럽습니다.
사진을 배우는 첫 마당에 육명심 선생님을 만나 뵙고, 그분께 배움을 구하고 있다는 사실은 ''재수''나 ''행운''과 같은 보통명사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축복에 속합니다. 막 입문한 문학 소년이 청록파나 생명파 시인, 혹은 황순원 선생님 같은 대가를 모시고 시작(詩作)의 기초나 문장 작법을 배우고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제 경우는 거기서 더 나아갑니다. 육 선생님의 가르침에 녹아 있는 사진 예술의 본질, 정수, 그리고 인생에 대한 통찰, 대가만이 전해 줄 수 있는 혜안까지를 생각하면, 네, 지금 저는 너무 과분한 은혜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이지요.
선생님께 사진을 배우는 동안, 배운 바를 기록하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여기에 꼭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합니다.
젊었을 적 선생님은 홀어머니 슬하에서 가난하게 사셨는데, 결혼 상대자였던 지금의 사모님의 가정은 꽤나 유복한 편이셨답니다. 사모님 집안의 어른들이 이 결혼을 반대했던 건 당연지사. 사모님은 결혼을 허락받기 위해 몇 일간 단식투쟁(?)을 하셨답니다. 육 선생님은 이 일을 까맣게 모르고 계시다가 결혼 후 몇 년이 지난 뒤 처가 쪽 친지 분에게 전해 들으셨다네요.
뒤늦게 아신 선생님께서는 곧 바로 사모님께 “당신 결혼 전에 이런 일로 단식을 했다면서요?''(선생님은 지금도 사모님께 존대를 하신답니다)”라고 묻지 않으셨답니다. 팔순이 넘으신 지금까지, 수십 년의 세월을 지나오시는 동안 이 일을 입 밖에 내지 않고 마음에만 간직하고 계시답니다. 사모님은 스스로 단식하셨던 일을 당신 마음 속 비밀로 간직하고 계시고, 선생님은 선생님 마음 속 비밀로 간직하고 계시는 것이예요. 사랑을 이루고자 한, 한 여인의 소박한 결기가 두 개의 비밀을 낳았습니다.
“그 마음이 너무도 소중해서 입 밖에 낼 수가 없었어요. 지금도 아내가 나랑 결혼하기 위해 단식했다는 사실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으면 설레고, 울림이 와요.”
육 선생님께 이 말씀을 듣는 순간, 저의 마음도 조금 설렜고, 울렸습니다. 그리고 행복했습니다. 한 여인의 결기가 두 개의 비밀을 낳았고, 두 개의 비밀은 그것을 전해들은 여러 사람들의 가슴에도 저마다의 설렘과 울림을 낳았습니다. 그 울림이 행복한 울림이 되어 더 많은 이들이게 퍼져 나가도 좋지 않을까요?
류달상 국어논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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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는 일은 본질적으로 늘 행복하지만, 그것이 오롯해질 때가 더러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편, 학생이 되어 뭔가를 배울 때입니다.
연초부터 저는 고마운 인연의 덕으로 차(茶)와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국어와 독서를 가르치고, 글 쓰고, 글 읽는 일을 업(業)이라고 생각하고 살며, 숭문(崇文)의 영역 밖에서 진득하게 뭔가를 추구해 본 바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것들이 주는 쾌락이 본업의 그것에 비견할 바가 못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올해 들어 저는 차와 사진을 배우며 행복했고, 그 행복은 오늘도 진행 중입니다.
배우는 일도 본질적으로 행복한 법입니다. 제 행복은 그냥 행복이 아니고 날로 달로 배가되는 행복입니다. 그것은 순전히 제게 가르침을 주시는 선생님들 덕분입니다. 저는 그걸 자랑하고 싶어서 몇 달 전부터 마음이 들떠 왔는데, 그걸 자랑하지 않고 마음에 꼭꼭 담아두고 꾹꾹 참으며 세월을 보내자니, 어떤 특별한 참는 일에는 쾌감이 뒤따른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저금통장에 잔고가 쌓여가고 하루하루 이자마저 불어가는 걸 바라보는 든든함 같은 거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제 이자가 부는 재미보다는 통장을 깨서 ''정승처럼 쓰는'' 쾌감을 만끽할 생각인데요, 괜찮겠지요?
제가 요즘 사진을 배우는 분은 육명심 선생님이십니다. 선생님의 함자를 글에 올려놓고 나니 슬그머니 송구한 생각부터 먼저 듭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내 스승 플라톤은 너무나 훌륭한 분이다. 그 분을 칭송하는 일도 아무나 해서는 아니 된다. 플라톤을 칭송할 자격이 있는 자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라고 했습니다. 지금 제 심정도 여기서 멀지 않습니다. 저는 많이 조심스럽습니다.
사진을 배우는 첫 마당에 육명심 선생님을 만나 뵙고, 그분께 배움을 구하고 있다는 사실은 ''재수''나 ''행운''과 같은 보통명사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축복에 속합니다. 막 입문한 문학 소년이 청록파나 생명파 시인, 혹은 황순원 선생님 같은 대가를 모시고 시작(詩作)의 기초나 문장 작법을 배우고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제 경우는 거기서 더 나아갑니다. 육 선생님의 가르침에 녹아 있는 사진 예술의 본질, 정수, 그리고 인생에 대한 통찰, 대가만이 전해 줄 수 있는 혜안까지를 생각하면, 네, 지금 저는 너무 과분한 은혜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이지요.
선생님께 사진을 배우는 동안, 배운 바를 기록하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여기에 꼭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합니다.
젊었을 적 선생님은 홀어머니 슬하에서 가난하게 사셨는데, 결혼 상대자였던 지금의 사모님의 가정은 꽤나 유복한 편이셨답니다. 사모님 집안의 어른들이 이 결혼을 반대했던 건 당연지사. 사모님은 결혼을 허락받기 위해 몇 일간 단식투쟁(?)을 하셨답니다. 육 선생님은 이 일을 까맣게 모르고 계시다가 결혼 후 몇 년이 지난 뒤 처가 쪽 친지 분에게 전해 들으셨다네요.
뒤늦게 아신 선생님께서는 곧 바로 사모님께 “당신 결혼 전에 이런 일로 단식을 했다면서요?''(선생님은 지금도 사모님께 존대를 하신답니다)”라고 묻지 않으셨답니다. 팔순이 넘으신 지금까지, 수십 년의 세월을 지나오시는 동안 이 일을 입 밖에 내지 않고 마음에만 간직하고 계시답니다. 사모님은 스스로 단식하셨던 일을 당신 마음 속 비밀로 간직하고 계시고, 선생님은 선생님 마음 속 비밀로 간직하고 계시는 것이예요. 사랑을 이루고자 한, 한 여인의 소박한 결기가 두 개의 비밀을 낳았습니다.
“그 마음이 너무도 소중해서 입 밖에 낼 수가 없었어요. 지금도 아내가 나랑 결혼하기 위해 단식했다는 사실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으면 설레고, 울림이 와요.”
육 선생님께 이 말씀을 듣는 순간, 저의 마음도 조금 설렜고, 울렸습니다. 그리고 행복했습니다. 한 여인의 결기가 두 개의 비밀을 낳았고, 두 개의 비밀은 그것을 전해들은 여러 사람들의 가슴에도 저마다의 설렘과 울림을 낳았습니다. 그 울림이 행복한 울림이 되어 더 많은 이들이게 퍼져 나가도 좋지 않을까요?
류달상 국어논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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