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면 더 많이 나타나는 건초염. 이 병은 같은 부위를 계속해서 무리하게 사용하면 생기는 질병으로 주로 손가락이나 손목에 잘 나타난다. 특히 오랫동안 요리 등으로 손목을 많이 써온 40~50대 주부에게 많이 생기는 것이 특징. 하지만 요즘은 나이에 상관없이 같은 부위를 많이 쓰는 요리사나 미용사 같은 직업군에도 많이 발생한다.
30대 중반의 주부인 서초동의 최 모씨도 얼마 전 아이들의 간식을 만들어 주기 위해 도마를 꺼내다 손목이 심하게 시큰거리는 증상을 겪었다. 전에도 간혹 이런 증상이 있었기에 파스만 붙이고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통증이 더 잦아지고 심해져 결국 병원을 찾게 됐다. 병명은 건초염.
주부라는 직업상 손을 많이 쓰는데다가 여름철에 습도가 높아지면서 증상이 더 심해진 것이다. 여름철에 더 심해지는 이유는 높은 기온과 습도에다 기압은 낮아지지만 반대로 관절 내 압력은 높아져 신경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런 건초염 환자는 건강보험관리공단의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 사이에 35%나 늘어났다고 한다.
남성보다 여성 환자가 많은 것도 특징
고려대 구로병원 외과센터장 김우경 교수는 “손가락과 손목 관절을 구부리고 펴려면 힘줄(건)이 제대로 움직여야 한다. 건초는 ‘건’을 싸고 있는 얇은 막으로 활액이 들어 있어 건이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도록 윤활작용을 해준다. 이곳에 염증이 생겨 윤활작용에 이상이 생기는 것이 ‘건초염’이다. 염증이 생기면 충혈 되고 부종이 생기는데, 이런 건초염은 손목뿐만 아니라 손가락, 발목, 무릎, 어깨 등 자주 사용하는 부위에는 어디나 생길 수 있지만 주로 나타나는 곳은 손가락이나 손목이다. 건초염은 같은 부위의 힘줄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했을 때 생기는 병”이라고 말했다.
건초염의 주요 증상은 손이 붓고 구부리거나 펼 때 뻑뻑한 느낌과 함께 통증이 몰려드는데 힘줄 근처를 누르면 통증을 느끼기도 한다. 심해지면 손가락이 굽혀진 상태에서 완전히 펴지지 않아 관절염으로 오인하기도 하며 여기서 더 심해지면 관절부위를 사용하지 않을 때에도 통증이 느껴진다.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힘줄과 힘줄을 싸고 있는 막이 부어서 손가락을 제대로 굽히거나 펴기도 어려워진다. 이때 손가락을 움직이면 자연스럽지 않고 뭔가 덜그럭거리는 느낌이 드는데, 이런 증상을 ‘방아쇠 수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정도까지 증상이 심해지면 수술도 고려해야 한다고 한다.
사실 건초염은 주부나 요리사, 미용사처럼 손을 많이 쓰는 사람이 주로 걸리지만 평소 손을 잘 쓰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무리해서 손을 사용해도 걸리는 경우가 많다. 즉, 평소 하지 않던 골프나 테니스, 배드민턴, 자전거타기 등을 무리해서 하거나 사무직에 종사하다가 은퇴 후 농사를 짓는 등 안 하던 운동을 하게 되면 건초염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젊은 사람은 신진대사가 활발하기 때문에 손에 염증이 생겨 건초염에 걸리더라도 금세 가라앉지만 노년층으로 갈수록 염증이 축적되기 때문에 증상이 심해진다고 한다. 또 여성 환자가 남성 환자보다 더 많은 것도 특징이다.
건초염은 한방에서도 많이 치료하는 질병이다. 해맞이동운한의원 홍준석 원장은 “한의학적인 관점에서의 건초염(건막염)은 어혈과 화열, 두 가지를 원인으로 본다. 외부적인 요인으로 발생하는 건초염은 화열로 보고 과다한 사용으로 인한 건초염은 어혈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임상에서는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고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편이다”라고 말한다. 또한 손상된 건막에 염증이 발생하면 염증을 완화시키기 위해 체액이 모이게 되고 모인 체액의 양에 비례해서 건막 내부의 압력이 증가해 통증을 더하게 된다. 이런 증상이 장기간 지속되면 건막이 거칠고 단단해지는 섬유화가 이루어져 주변 조직과 마찰이 생기면서 협착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사실 이런 건초염은 손목터널증후군이나 관절염과 혼동되기도 한다. 구로병원의 김 교수는 “손목터널증후군은 신경이 눌려서 생기는 질환으로 손가락이 저리거나 아프지만 건초염의 경우 저리는 증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또 관절염은 관절에 염증이 생기고 오래도록 통증이 지속되는데다 한 손만이 아니라 양 손에 통증이 같이 오지만 건초염은 하나의 손가락 마디가 아프고 딱딱해진다”며 스스로 판단하기는 어려우니 반드시 전문의를 찾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섣부른 자가진단보다는 전문의 찾아 치료해야
건초염의 치료법은 자주 쓰는 부위에게 휴식을 주는 것이 1순위. 요리를 하느라 발생했다면 당분간이라도 요리를 쉬고, 안 하던 운동을 하다가 발병했다면 나을 때까지 만이라도 운동을 그만두어야 한다. 또 소염제를 먹어 염증을 가라앉히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자가치료로 냉온찜질을 하는 방법도 있는데 이 방법은 증상과 시기에 따라 냉찜질로 할 지 온찜질이 효과가 있는지 달라지기 때문에 역시 전문의를 찾는 것이 좋다. 만성 건초염일 경우 냉찜질은 오히려 증상을 악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발생초기라면 냉찜질이 좋을 수도 있다. 홍 원장은 “발생초기에 열감이 있거나 발생부위에 붓기가 있다면 얼음찜질 같은 냉찜질을 해주면 효과가 있다”며 4~6시간 간격으로 15분 정도 냉찜질을 해주라고 했다.
이렇게 해도 차도가 없다면 국소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고 심해지면 수술을 하는 방법도 있다. 수술은 국소 마취를 하고 5분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간단한 수술이다. 만일 수술이 두렵다면 침이나 뜸으로 하는 한방치료도 있다.
침 치료는 사암침법을 쓰는데 침을 통해 경락의 기혈을 조절해 치료하는 방법이다. 방아쇠 수지증에 효과가 있으며 이 외에 약침요법을 쓰기도 한다. 약침은 한의사가 직접 만든 침으로 협착 부위의 협착을 완화시켜 질병을 낫게 하는 효과가 있다. 이외에 뜸도 효과적인 한방치료법 중 하나이다. 최근에는 직접구를 사용해 뜨는 뜸보다는 간접구로 뜨는 뜸이 대세이다. 직접구로 뜸을 뜨면 자칫 상처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아프지 않으면서도 효과가 있는 간접구로 뜨는 경우가 많다.
건초염을 예방하는 특별한 방법은 없지만 모든 병이 그렇듯 발생초기에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칫 증상이 미미하다고 방치했다가는 치료방법이 힘들어 질 수도 있고 치료가 된다하더라도 재발의 위험성이 높다.
구로병원 김 교수나 해맞이동운한의원의 홍 원장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손 자체에는 굉장히 민감하고 정교한 신경이 많기 때문에 건초염이 의심되면 반드시 전문의를 찾아야 하며 무거운 물건을 들지 말고 건초염의 종류에 따라 엄지손가락을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다. 또한, 특정 부위를 과도하게 움직이는 것을 절대적으로 피하고 자주 손에게 휴식을 주라고 했다. 또한, 콩팥이나 대사에 문제가 발생하면 손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항상 몸을 보하는 데 신경 써야 한다고도 했다.
도움말 김우경 교수(고려대 구로병원 수부외과센터장), 홍준석 원장(해맞이동운한의원)
장시중 리포터 hahaha121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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