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 어디까지 가봤니-만안교

타임머신 타고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다

지역내일 2013-08-29

안양대교를 지나 석수동으로 가는 길, 왼편에는 석수시장이 오른편에는 만안교로 가는 골목길이 나온다. 길 양쪽으로 주차한 차들로 인해 만안교로 가려면 맞은 편 차를 피해 천천히 가야 한다. 아침저녁 선선한 바람이 불지만 아직 한 낮의 햇살은 따갑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이런걸까. 만안교 앞에 다다르자 사극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내가 극중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만안교

백성들이 만년 동안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다리
사진 촬영을 위해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눈으로 본 만안교와 렌즈 속의 만안교는 확연히 달랐다. 렌즈 속에는 코발트빛 하늘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고, 다리를 유유자적 거니는 노인의 모습도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다리 위를 거닐어 보았다. 역시 느낌이 달랐다. 지금 세상은 21세기이지만 다리 위는 18세기 조선시대였다.
만안교는 효성이 지극했던 조선 제22대 임금인 정조가 억울하게 참화를 당한 생부 사도세자의 능인 현륭원을 참배하러 갈 때, 참배행렬이 편히 건너도록 축조한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홍예석교이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능을 양주에서 화산으로 이장한 후 자주 능을 참배하며 부친의 원혼을 위로하였다고 한다.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에 따르면 수원에 위치한 사도세자의 능에 동행한 인원은 5000명이 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정조의 재위 기간동안 수원으로 향한 왕의 대규모 행차가 여러 번 이루어졌고
이로 인해 참배행렬은 그 당시 온 백성의 관심거리였다.
당초의 참배행렬은 궁궐을 떠나 용산에서 배다리를 놓아 한강을 건너고 노량진, 과천, 수원을 경유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길은 다리가 많고 남태령이라는 험한 고갯길이 있어 행차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또 과천에 영조를 부추켜 사도세자의 처벌에 적극 참여한 김상로의 형인 김약로의 묘가 있었으므로 불길하다하여 시흥 쪽으로 행로를 바꾸면서 이곳 안양천을 경유하게 되었다. 안양천에는 원래 다리가 없어 왕의 행차 시에는 나무다리를 가설했다가 왕의 행차가 있은 뒤에는 바로 철거하는 것이 상례였다. 시흥로가 개설된 것은 정조 18년으로 첫 해에는 이처럼 임시로 나무다리를 놓아 사용하였는데 다리를 놓았다 헐었다 하는 번거로움과 평상시 다리가 없어 백성들의 불편함을 배려해 돌다리를 놓게 되었다. 

정조가 직접 이름지은 만안교
정조가 만안교를 지난 것은 7번째 능행부터이다. 처음 나무다리를 놓아 왕의 행렬이 지나갈 수 있도록 하였으나 경기관찰사 서용보에 의해 돌로 이를 대체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1795년에 당시 경기관찰사 서유방이 왕명을 받들어 3개월의 공역 끝에 길이 31.2m, 너비 8m에 7개의 갑문을 설치하고 그 위에 화강암 판석과 장대석을 깔아 축조하였다. 축조양식이 정교하여 조선후기 대표적인 홍예석교로 평가받고 있다. 홍예는 정교하게 다듬은 장대석을 써서 반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그 위에는 장대석을 깔아 노면을 형성하였다. 전체적으로 축조 양식이 매우 정교하여  만안교처럼 홍예가 7개인 다리는 만안교가 유일하다.
만안교의 원래 위치는 남쪽 200m 지점의 안양천에 있었으나 국도확장사업으로 1980년 8월 이곳 만안구 석수2동의 삼막천으로 이전하였으며 다리 앞에는 서유방이 글을 짓고 조윤형이 쓴 만안교비가 있어 이 다리의 연혁을 설명해주고 있다. 이곳에서는 매년 안양의 대표적인 민속놀이인 만안교 다리밟기가 펼쳐진다. 

만안교2

만안교의 이름 또한 정조가 직접 지었다고 한다. 만안교의 의미는 만년 동안 백성들이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다리라는 뜻이다. 즉 만안교는 왕이 효를 행하되, 만백성이 또한 고루 이로움이 있게 지은 다리라고 볼 수 있다. 다리 남쪽에 세워져 있는 만안교 교비는 세월의 흔적을 말해 주는 것처럼 비바람에 깎여져 있었는데, 전형적인 조선 후기 양식을 엿볼 수 있었고, 상상의 동물로 만든 귀부와 축조에 대한 글이 새겨져 있는 비신 그리고 흔히 지붕돌로 불리는 가첨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취재를 마치고 나오는 길, 아이의 방학숙제를 위해 만안교 답사를 나왔다는 한 가족을 만났다. 안양8경에 포함될 만큼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유적 앞에서 사진촬영을 하며 아이의 엄마가 이런 말을 했다.
“그냥 지나치면 보잘 것 없는 석교일지 몰라도 그 나름대로의 역사적 의미를 부여한다면 만안교를 바라보는 시각이 180도 달라져요. 요즘처럼 핵가족사회에서 효가 무엇인지, 또 역사적인 사실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직접 와서 보고 느끼면 교육적으로도 분명히 산 교육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배경미 리포터 ba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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