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원인불명의 바이러스로 사망한다. 밀입국 이주노동자들을 실어 나른 컨테이너에서 발현된 변종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사망한지 24시간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분당의 모든 병원에 유사 환자들이 속출한다. 호흡기로 초당 3.4명 감염, 3시간 내 사망. 신종 바이러스의 무시무시한 전염력 앞에 결국 정부는 도시폐쇄를 선언하고, 사람들은 거대한 재난의 회오리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지난 14일 개봉한 영화 ‘감기’의 줄거리이다.
현실 가능한 이야기
영화 속에 등장하는 바이러스는 조류인플루엔자의 한 종류인 H5N1의 변종이다. H5N1는 실제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발생해 약 60%의 사망자를 낸 무서운 바이러스다. 조류사이에서만 퍼지던 질병이 변이를 일으켜 사람한테 옮겨지고, 이 바이러스가 또 한 번 변이를 일으켜 스스로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변종이 위험한 이유는 계속해서 백신을 만들어내지 않는 한 치료제가 없기 때문이란다. 2009년 유행했던 신종 플루는 계절성 유행 독감과 같은 H1N1바이러스였다. 하지만 변종이었기에 기존 치료제로는 효험이 없었다.
실제 현실에서 바이러스가 퍼지면 영화 속에서처럼 도시가 폐쇄되는 걸까? 답은 예스다. 재난 매뉴얼이 있어서 그에 따라 단계별 차단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2008년 조류독감, 2010년 구제역 때를 생각해보면 짐작이 간다. 그래도 그때는 동물의 병이었는데 사람도 질병에 걸리면 동물과 똑같은 취급을 당한다니. 문득 영화 속 감염자들이 살 처분된 가축처럼 함부로 취급당하던 장면이 생각난다. 병도 끔찍하지만 병을 진압하려는 사람도 끔찍하다.
위기에서 나타나는 진면목
사람의 속마음은 어려움을 함께 겪어봐야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평화로운 시절엔 누구나 천사표고 누구나 신사·숙녀이기 때문에 그 검은 속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약간의 위기 상황만 주어지면 사람들은 금방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고 만다. 위기 앞에서도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만을 염려하는 정치인들, 자신이 가진 것을 총동원해서 어떻게든 본인만 탈출하려고 애쓰는 국환(마동석 분), 다수의 건강을 염려해야 하는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딸을 위해서라면 재난 매뉴얼도 무시하는 인해(수애 분), 본인들이 불합리하게 갇혔다고 생각하자 집단광기를 보이기 시작하는 시민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처한 입장에서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판단을 한다. 위기감이 고조될수록 이타심을 발휘하는 사람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와중에 하루 만난 여자와 그 여자의 아이를 구하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하는 지구(장혁 분)의 모습은 상당히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이성적으로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되지만 정서적으로는 공감하기 어렵다. 누가 감히 자신의 목숨까지 담보로 잡혀야 하는 상황에서 다른 이를 위해 손을 내밀 수 있을까? 그래도 김성수 감독은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 같다. 그러니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나아가 우리가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자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대형 블록버스터 재난영화
‘감기’는 제작비 100억을 들여 만든 영화다. 격리수용소 장면을 위해 실제로 탄천에 거대한 세트를 세워놓았고, 도로에서 벌이는 대규모 액션 장면을 위해 미 개통된 행신동의 차도를 점거했다. 이 도로 대규모 액션 장면에는 무려 약 300여명의 보조출연자들이 동원되기도 했다. 한국 영화사상 최대 규모의 엑스트라 투입으로 ‘감기’의 거대하고 육중한 스케일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재난은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일이다. 개인의 힘으로 막거나 피할 도리가 없다. 그렇다면 문제는 ‘재난이 벌어졌을 때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아닐까. 재난을 맞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지, 어떻게 반응하고 움직이고 판단하느냐에 집중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비트’, ‘무사’ 등을 연출했던 김성수 감독이 10년 만에 스크린 앞으로 돌아와 관객에게 던진 질문이다. ‘파괴적인 재난 앞에서 당신은 어떻게 행동 하시겠습니까?’
이지혜 리포터 angus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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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가능한 이야기
영화 속에 등장하는 바이러스는 조류인플루엔자의 한 종류인 H5N1의 변종이다. H5N1는 실제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발생해 약 60%의 사망자를 낸 무서운 바이러스다. 조류사이에서만 퍼지던 질병이 변이를 일으켜 사람한테 옮겨지고, 이 바이러스가 또 한 번 변이를 일으켜 스스로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변종이 위험한 이유는 계속해서 백신을 만들어내지 않는 한 치료제가 없기 때문이란다. 2009년 유행했던 신종 플루는 계절성 유행 독감과 같은 H1N1바이러스였다. 하지만 변종이었기에 기존 치료제로는 효험이 없었다.
실제 현실에서 바이러스가 퍼지면 영화 속에서처럼 도시가 폐쇄되는 걸까? 답은 예스다. 재난 매뉴얼이 있어서 그에 따라 단계별 차단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2008년 조류독감, 2010년 구제역 때를 생각해보면 짐작이 간다. 그래도 그때는 동물의 병이었는데 사람도 질병에 걸리면 동물과 똑같은 취급을 당한다니. 문득 영화 속 감염자들이 살 처분된 가축처럼 함부로 취급당하던 장면이 생각난다. 병도 끔찍하지만 병을 진압하려는 사람도 끔찍하다.
위기에서 나타나는 진면목
사람의 속마음은 어려움을 함께 겪어봐야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평화로운 시절엔 누구나 천사표고 누구나 신사·숙녀이기 때문에 그 검은 속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약간의 위기 상황만 주어지면 사람들은 금방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고 만다. 위기 앞에서도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만을 염려하는 정치인들, 자신이 가진 것을 총동원해서 어떻게든 본인만 탈출하려고 애쓰는 국환(마동석 분), 다수의 건강을 염려해야 하는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딸을 위해서라면 재난 매뉴얼도 무시하는 인해(수애 분), 본인들이 불합리하게 갇혔다고 생각하자 집단광기를 보이기 시작하는 시민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처한 입장에서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판단을 한다. 위기감이 고조될수록 이타심을 발휘하는 사람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와중에 하루 만난 여자와 그 여자의 아이를 구하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하는 지구(장혁 분)의 모습은 상당히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이성적으로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되지만 정서적으로는 공감하기 어렵다. 누가 감히 자신의 목숨까지 담보로 잡혀야 하는 상황에서 다른 이를 위해 손을 내밀 수 있을까? 그래도 김성수 감독은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 같다. 그러니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나아가 우리가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자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대형 블록버스터 재난영화
‘감기’는 제작비 100억을 들여 만든 영화다. 격리수용소 장면을 위해 실제로 탄천에 거대한 세트를 세워놓았고, 도로에서 벌이는 대규모 액션 장면을 위해 미 개통된 행신동의 차도를 점거했다. 이 도로 대규모 액션 장면에는 무려 약 300여명의 보조출연자들이 동원되기도 했다. 한국 영화사상 최대 규모의 엑스트라 투입으로 ‘감기’의 거대하고 육중한 스케일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재난은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일이다. 개인의 힘으로 막거나 피할 도리가 없다. 그렇다면 문제는 ‘재난이 벌어졌을 때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아닐까. 재난을 맞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지, 어떻게 반응하고 움직이고 판단하느냐에 집중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비트’, ‘무사’ 등을 연출했던 김성수 감독이 10년 만에 스크린 앞으로 돌아와 관객에게 던진 질문이다. ‘파괴적인 재난 앞에서 당신은 어떻게 행동 하시겠습니까?’
이지혜 리포터 angus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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