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고사 시즌이다. 또 한 차례 공부를 왜 해야하는지, 어떻게 할 것인지 아빠와 아이 사이에서 설전이 벌어져야 하는 시기다. 나중에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직장 얻으라고 아이를 위해서 조언을 하는건데, 아이는 아직 아빠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 같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시험도 잘 보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들의 비율도 높지 않고, 더군다나 성적까지 잘 나오는 아이들의 비율은 더 적다. 사실 공부도 대강하고, 성적도 대강 나오는 우리 아이가 이 시대의 보통 사람일 수도 있다. 그리고 세상엔 보통 사람이 가장 많다.
흥미로운 것은 전교 1등은 학교에 한 명 뿐이고, 삼성전자에 취직하는 대학생은 전체 대학 졸업생 중에 0.1%도 안될텐데, 대략 80%를 차지하는 보통의 학생들이 상위 몇%에 들어가야 한다는 통계적으로 불가능한 기대를 가지고 살면서, 불필요한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성공한 사람들의 삶은 도전과 성취로 가득 차있다. 어릴 때 부모가 이혼하고 길바닥에 내쳐진 아이는 하버드에 진학하고, 경상도 촌구석에서 상고마저 자퇴한 아이는 세계를 누비며 각국의 바이어들을 만나고 다닌다. 성공한 이들의 에피소드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역경의 순간에 오히려 성공의 발판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대명사가 되어버린 ‘버킷리스트’라는 말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목록을 말하는데, 이 말이 동명의 영화에서 죽음을 앞둔 환자 2명이 죽음 전의 시간을 보낼 방법으로 나오면서 유명세를 탔다. 우리나라에서도 저자가 암에 걸리면서 죽기 전에 하고 싶은 73개의 꿈 리스트를 작성해서 하나씩 이루어가는 과정을 담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런데, 버킷리스트와 73개의 꿈 리스트의 공통점은 모두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 작성되었다는 것이다. 가장 절망적일 수 있는 순간을 극복하기 위한 절박함이 만들어낸 리스트인 것이다. 약간 과장을 더해서 표현하면, 바로 지금 이 순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결과가 쌓여서 미래의 성공이라는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그러면 절박함을 심어주기 위해서 보통 사람인 아빠가 일부러 실직을 하거나 사업을 망하게 해야하는가? 아니다. 우선은 아이가 먼 미래를 보지 못하는 것을 비난하지 말자. 아이는 미래를 못보는 게 아니라 현재의 즐거움을 위해서 보기를 미룬 것이다. 위의 사람들도 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리스트를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아이의 마음을 알면서 비난하는 것은 쓸데없이 불만만 키운다.
아빠는 지금 현재 당면한 문제에 초점을 맞춰야한다. 현재의 즐거움을 유지하려면 지금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아이와 같이 의논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PC방에 1시간을 가려면 공부는 몇 시간을 하는 것이 지금의 성적에 대한 불안감을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다. 그리고 PC방에 다녀왔을 때는 ‘놀만큼 놀았으니까 이제 공부해’라고 하기보다는 ‘시간 지켜서 잘 왔네. 약속지켜서 고맙다.’와 같이 제 시간에 귀가한 것을 칭찬해주자.
비난을 줄이고 아이의 즐거움을 인정해줄 때, 아이는 미래를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지우심리상담센터 성태훈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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