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시공사 출판
발매 2013. 3. 25.
가격 12,000원
“우린 모두 망명 중이에요. 과거 자신의 모습, 지키고 싶었던 모습, 그리고 어쩌면 정해져 있을지도 모를 미래의 모습을 우린 잃어버리고 살아요. 대신 다른 무언가를 발견하죠. 우리가 발견한 게 우리가 줄곧 찾았던 게 아니라고요.”
“과거가 현재로 걸어 들어왔다. 기억은 이미 지나갔고, 현재로 돌아올 수 없는 시간에 해당되는 것이지만, 그 생생함만은 결코 현재에 못지않았다. 그래서 친구들은 자신들이 늙었으면서도 동시에 젊게 느껴졌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다시 또렷이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상대의 늙은 얼굴에서 방금 기억 속에서 만난 젊은 얼굴을 다시 알아보고 싶었다. 아직 마음속에 젊음을 간직하고 있고, 젊음으로 돌아갈 수도 있고, 젊음 속에서 자신을 재발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젊음이 지나간 것만은 되돌릴 수 없었다.”
현재에 비추어 본 과거, 우린 모두 망명 중이다.
몇 년 전 『책 읽어주는 남자』라는 책과 동명의 영화로 우리에게 알려진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신작이다. 테러리스트로서 살인을 감행하고 20여 년간 수감되었다가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외르크. 누나인 크리스티아네는 자유인이 된 동생의 첫 번째 주말을 기념하기 위해 자신과 동생의 옛 친구들을 교외의 별장으로 초대한다. 젊은 시절 함께 혁명을 꿈꾸던 청년들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각자 다른 길을 찾아갔다. 이제 사회에서 안정적인 위치에 선 그들은 옛 친구에 대한 의리로, 혹은 과거에 대한 그리움으로, 아니면 테러리스트 친구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주말 초대에 응한다.
처음 그들은 외르크의 지난 행동에 대해 저마다의 다른 견해를 보였다. 그리고 외르크의 미래, 즉 앞으로의 삶의 방향에 대해 각자의 가치관과 우정을 기준으로 열띤 토론을 벌이게 된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손님의 등장으로 모두는 충격에 빠지고, 외르크도 자기 자신에 대해 이성적으로 설명해내기 힘듦을 느낀다. 이런 혼란을 함께 겪으면서 그들이 깨달은 건 외르크는 실패했고 자신들은 그럭저럭 성공했다는 생각이 틀렸다는 것이다.
외르크가 원래 스스로 원했던 사람이 되지 못한 것처럼 자신들도 그렇다는 것을. 기나긴 망명의 시간을 떠돌다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그리고 함께 젊은 시절 자신이 과거에 무엇을 꿈꾸었는지, 어떤 파고에 휩쓸려 어떤 망명지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 망명지와 어떻게 화해했는지 이야기를 나눈다. 소설 속 인물들의 과거를 함께 좇아가면서, 나는 어디에서 망명 중인지 다시금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박혜준 리포터 jenna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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