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공부 삼매경에 빠진 학생들이 있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기에 방대한 영어의 바다를 헤엄치는 일 역시 기꺼이 즐긴단다. 시각장애청소년들을 위해 한글동화를 영어로 번역, 점자도서를 만들어 출판하는 역삼청소년수련관 청소년자치기구 소속 ‘잉글토리봉사단’. 배우는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스스로 성장, 발전해가는 동아리
잉글토리봉사단의 역사는 자못 흥미롭다. 대원외고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교내동아리로 출발하려했지만 활동에 필요한 여러 제반사항들이 갖춰지지 않아 어려움이 따랐다. 지역과 연계해 활동방안을 모색하던 중, 역삼청소년수련관의 도움으로 공식 출범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대원외고뿐 아니라 중대부고, 서초고 등 강남서초 지역 학생들이 활동하는 ‘몸집 큰’ 청소년동아리로 성장했다. 영어번역이라는 쉽지 않은 도전 역시 학생들 스스로가 내실을 다지는 좋은 밑거름이 되었고, 진정한 나눔의 의미와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가겠다는 의지를 더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됐다. 잉글토리봉사단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동아리에 대해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자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해 잉글토리봉사단 리더였던 이형규(대원외고3) 군은 “선배들이 맹아학교에서 봉사를 하다 영어책이 없다는 걸 알고 잉글토리봉사단을 만들었다”며 “물론 시각장애청소년들이 영어 점자도서를 읽을 수 있도록 하고 그들을 위해 봉사와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지만, 오히려 그 과정 속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며 활동 소감을 대신했다.
김재근(중대부고2) 군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벅찬 마음도 있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영어번역이 영어공부에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며 “1차로 번역한 내용을 팀원들과 돌려보며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첨삭과정 덕분에 영어실력도 한 단계 향상되었다”고 덧붙였다.
200부 이상 맹학교에 무료 배포
초기에는 주로 전래동화를 번역하는데 주력했지만, 지난해부터는 베스트셀러부터 신간까지 그 영역을 넓혀 다양한 책을 번역해왔다. 전래동화는 작품 수가 한정돼 있어 시각장애청소년들이 좀 더 다양한 책을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물론 번역을 하면서 남모를 고충도 있다. 한국의 문화가 반영된, 그야말로 토종 단어를 영어로 어떻게 변역할 것인가의 문제에 봉착했다는 것.
남용주(서초고 2) 양은 “선녀나 도깨비 등은 우리 고유의 문화적 배경지식이 반드시 필요한 단어이기 때문에 적절한 영단어를 찾기가 어렵다”며 “대신 저희가 어릴 때 읽었던 책들을 번역해 조금 더 쉽게 접근해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박지혜(대원외고 2) 양이 거들며 “대신 상중하로 난이도를 구분해 점자도서를 만드는 등 해를 거듭할수록 동아리도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며 덧붙였다.
지금까지 잉글토리봉사단은 『심청전』, 『우렁이각시』, 『견우와 직녀』 등 전래동화 외에 『책 먹는 여우』, 『우동 한 그릇』, 『마지막 수업』, 『단추스프』, 『행복한 청소부』, 『산타를 꼭 만나고 말거야』, 『피자야 제발 도와줘』 등 다양한 도서들을 번역해왔다. 지금까지 약 200부에 달하는 도서를 한빛맹학교 등 여러 맹학교 및 공공기관에 무료로 배포하는 등 아름다운 나눔을 실천해왔다. 번역뿐 아니라 책에 들어갈 삽화를 단원들이 직접 그리거나 영어 구연동화를 녹음하는 등 시각장애청소년들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아름다운 환원으로 나눔 실천
잉글토리봉사단의 수상내역은 그야말로 화려하다. 제12회 서울청소년자원봉사대회에서 한국청소년연맹 총재상을, 제5회 청소년행복나눔자원봉사대상에서 행복나눔 은상을 수상했다. 이 외에도 푸르덴셜 전국청소년자원봉사상과 교자원봉사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지만 화려한 수상내역보다 더 훈훈한 사연을 갖고 있다.
이예림(대원외고 2) 양은 “선배들이 활동할 때부터 지금까지 받은 모든 상금은 시각장애청소년들을 위한 점자도서를 만드는데 사용됐다”며 “이런 아름다운 환원이 세상의 밝은 빛을 나누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며 뿌듯한 마음을 드러냈다.
장애우들을 직접적으로 돕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더 장기적인 안목으로 시각장애청소년들이 공부할 수 있는 교육 자료를 만들어 그들과 배우는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보람이 더 크다는 잉글토리봉사단. 이들의 활동이 앞으로 더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단원들을 대표해 올해 리더를 맡은 박주영(대원외고 2) 양에게 앞으로의 활동계획에 대해 물었다.
“제가 대미를 장식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군요.(웃음) 2013년도에는 번역, 녹음작업 뿐 아니라 직접 점자책을 찍어볼 생각입니다. 또한 전자책을 만들어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여러 방안을 모색 중이고요. 단원 모두가 동아리 취지에 맞게 나눔을 실천한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함께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올 한해 저희를 이끌어주실 박영지 선생님, 그리고 잉글토리봉사단 모두 힘차게 파이팅입니다!”
피옥희 리포터 piokhee@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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