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뇌가 지금보다 더 잘 돌아갈 때는 없었다

지역내일 2013-04-11

‘신기하다.
시력이 너무 좋아졌다.
나무 위에 앉아 있던 까치가 독수리만 하게 보이고,
매일 지나던 길에 예전부터 있었던 미처 몰랐던 간판들이 새삼 다시 보이고,
아침에 하늘에 떠 있는 새털구름이 선명하게 보이고,
원주 시내를 둘러싼 산들이 뚜렷이 보인다.
신기한 일이다.
기대된다.
다음엔 또 무슨 신기한 일이 일어날지,’    후략


윗 글은 단주한 지 3년쯤 된 L씨가 강원알코올상담센터의 게시판에 쓴 글이다. 단주로 점점 더 회복되어 가면서 시각이 더 명료해진 것을 신기한 듯이 예리하게 묘사하여 감동을 준다. 시각만이 아니라 청각이나 다른 감각도 마찬가지 아닐까.
과음이 점진적으로 인간 기능을 황폐화시키듯, 단주를 하면 모든 기능이 매우 점진적으로 회복되어 간다. 대표적으로 뇌의 기능이 그러하다. 뇌가 제대로 기능하면 외계를 정확하게 포착하고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 어떻게 대응할 지는 그 다음 일이다.
자극을 제대로 느껴야 제대로 지각할 수 있다. 자신의 생각이나 동기와 감정을 제대로 알고, 이를 넘어서서 상대까지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야 서로 만족한 관계를 이룰 수 있다. 이런 뜻에서 회복한 또 다른 사람의 아래 글도 퍽 절실하다.


   ‘이제야 나의 뇌가 그 어느 때보다 잘 돌아가는 것 같다. 이제야 내가 아내와 애들에게 준 상처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 지를 느낄 수 있다. 좋던 싫던 간에 나의 마음과 나의 감정을 느낀다. 그동안 전혀 생각해 보지도 않았는데, 그동안의 삶은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안다. 이제는 더 나은 미래를 간절하게 바라고 꿈꾼다. 이제는 정말로 내가 원하는 삶을 찾을 수 있겠다고 느낀다.’


이제 술을 끊으려는 이들에게 그는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만약 술을 끊고 싶다면,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왜, 어떠했기에, 따위로 자꾸 분석하려 하지 말고 무조건 그냥 끊으면 된다. 아무리 따져봤자 술을 끊지 않는 한 아무 것도 발견할 수 없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술부터 끊는 것이다. 그러자면 다른 무엇보다 자신이 문제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너무 창피하고 굴욕적이지만, 바로 그 모욕감을 극복해야 단주를 시작할 수 있다.’
뇌가 아직 온전히 회복하지 않았는데 그대는 아직도 무얼 더 따지려고 하고 있지는 않는가.


강원알코올상담센터 신정호 소장(연세대 원주의과대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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