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큰 도에 해가 되는 것은 자만심보다 더 심한 것이 없다.
- 홍대용 『의산문답』
북극 바다에 고기가 있는데 그 이름을 곤(鯤)이라 하였다. 곤의 길이는 몇 천 리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 그것이 변하여 새가 되면 그 이름을 붕(鵬)이라 하는데, 붕의 등도 길이가 몇 천 리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 붕이 떨치고 날아오르면 그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도 같았다. 이 새는 태풍이 바다 위에 불면 비로소 남극의 바다로 옮아갈 수 있게 된다. 남극 바다란 바로 천지(天池)인 것이다.
- 『장자』 소요유 1
매미와 작은 새가 그것을 보고 웃으면서 말하였다. “우리는 펄쩍 날아 느릅나무 가지에 올라가 머문다. 때로는 거기에도 이르지 못하고 땅에 떨어지는 수도 있다. 무엇 때문에 9만 리나 높이 올라 남극까지 가는가? - 『장자』 소요유 3
철학고전을 읽을 때는 겸손해야 합니다. 이해하려는 데 목적을 두는 겸손함이 글을 대하는 사람이 가져야 하는 첫 번째 자세입니다. 비판을 앞세우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에 비해서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양과 질이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금요일마다 어른들과 『논어』를 읽고 있는데, 전에 어떤 분께서 ‘巧言令色 鮮矣仁(교언영색 선의인, 말을 교묘히 잘 하고 표정을 꾸미는 사람치고 인한 이가 드물다.)’이라는 구절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말을 교묘히 잘하는 것이 인(仁)한 것에 멀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얼굴 표정을 꾸미는 게 왜 인하지 않은지 도무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속마음을 솔직히 털어 놓아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보다 얼굴 표정을 꾸미는 것이 상대방을 위하는 길이므로 그것이 더 인한 것 아니냐는 항변이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제 삶의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투철한 신념에서 국가나 종교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람이나 상황에 따라 팔색조처럼 사는 사람이나 저마다 삶의 기준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누구나 나이, 성별, 학력, 직장과 직책 등 자신이 처한 환경에 적응하는 동안 나름대로 최선의 방법을 찾아 살면서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게 증명 되는 삶의 방식들은 자기의 기준과 규칙으로 수용하는 한편 그렇게 사는 것이 올바르고 행복하다는 믿음도 갖게 됩니다.
그분도 지인들에 따르면 자신의 삶의 기준에 따라 열심히 사시는 분이셨습니다. 가정, 친구, 직장에서도 인정받는 분이었습니다. 비록 함께 공부한 시간이 오래 되지는 않았지만 제가 보기에도 야무지고 명석하신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바로 자신의 기준이 ‘황금률’인 것으로 착각하는 태도가 ‘옥의 티’처럼 보였습니다.
누구나 인정할 수 있고 따르게 되는 삶의 황금률이 있는가, 없는가는 단정 짓기 힘듭니다. 하지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삶의 기준이 황금률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삶의 기준은 모든 사람의 인정을 받을 수 없는 불완전한 ‘개똥철학’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남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남의 생각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귀를 닫거나 비난하기에 앞서 이해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부족한 곳이 채워지고 굽은 부분이 바로서기 때문입니다.
결론을 내리자면 철학고전을 잘 읽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저자나 주인공의 말이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예단·배척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글의 참뜻과 좋은 정보를 놓치지 않게 됩니다. 더 나아가 글을 읽는 과정이 수양의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장자』첫머리에 나오는 곤이라는 물고기는 북극 바다에서 편히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힘들게 붕이라는 새로 변해서 구만 리 장천에 올라 긴긴 시간 기어코 남극의 천지로 가려고 하는 걸까요? 우리는 그것을 이해하려고 해야 합니다. ‘웃기는군.’ 냉소를 터뜨리는 순간부터 매미와 잡새로 살아가야 합니다.
글이 이해가 안 되거나 인정하기 힘들 때의 팁
의문이 일거나 나와 생각이 다른 부분은 반드시 표시를 해두었다가 글을 끝까지 읽은 다음에 전체의 대강에 맞추어 그 부분을 다시 이해하도록 애써보십시오. 힘들거나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비판할 것이 있다면 조목조목 따져 ‘글’로 써보도록 하십시오. 글로 써보면 머리로만 따져보는 것보다 유익한데, 책의 내용이 비판 받을 만한 허점이 있어서 내 마음에 거슬리는 것인지, 막연한 감정상의 반발인지 확연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글 : 설승전 원장 (현 청암학원, 충북대학교 철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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