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이다. 부모도 아이도 가장 열의가 넘치는 시기이다. ‘혹여 우리 아이가 잘 적응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고민부터 ‘학기 초부터 확실하게 학습 습관을 만들겠다’는 비장한 각오까지 엄마들의 스트레스가 적지 않다. 하지만 자칫하면 넘치는 것이 모자란 것만 못하다. 뼈아픈 경험을 통해 ‘제발, 3월에는 조심하자’는 선배 맘들의 사연들을 알아보았다.
엄마의 취업과 이사 등 환경의 변화는 반갑지 않은 스트레스
# 남매를 키우는 김아무개(39) 씨. 둘째가 유치원만 적응하면 본업이었던 ‘구성작가로 반드시 복직하고야 말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었다. 둘째 낮잠 재운 자투리 시간에 모집공고를 뒤지는 것은 물론, 옛 직장 동료에게 수시로 “좋은 자리 없느냐?”고 물어보곤 했다.
그런 김 씨의 정성에 감동(?)해서인지 작년 3월 말, 탐날만한 일자리가 들어왔다. 문제는 당시 34개월이던 둘째. 다음 해에 보내려고 유치원도 접수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김 씨는 계획을 급수정, 일사천리로 3월 하순부터 유치원에 등원시켰다. 어디든 스스럼없이 잘 어울리고 친구들과 잘 지냈던 아이라 새로운 환경도 잘 적응할 거라 믿으면서.
하지만 화려한 복직을 하려던 김 씨의 꿈은 유치원 등원을 거부하는 둘째 때문에 한 방에 깨졌다. “아이가 완강하게 ‘유치원엔 절대 안 갈 거야’ 하더라고요. 유치원이라는 새로운 환경도 벅찬 데 늘 함께 있던 엄마까지 갑자기 불규칙적으로 얼굴을 보이니 불안했던 것 같아요.” 결국, 유치원은 포기하고 평상시 아이가 좋아하던 시고모님이 집에서 돌봐주시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하지만 아이가 집 밖에 나가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물론 유치원에 갈 때 입으려고 산 옷들도 절대 입지 않는 등 한동안 후유증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이후 김 씨는 “전업주부에서 다시 일을 시작하려면 아이가 새로운 곳에 적응해야 하는 3월은 피하라”고 누누이 강조하고 다닌다.
# 올해 3월 아이가 초등학생이 된 전업주부 남아무개(38) 씨는 고민하다가 좋은 취업 자리를 고사했다. 입학과 동시에 이사를 하게 된 남 씨. 무리해서 넓은 평수로 옮겨 대출금이 부담스러운 차에 취업은 더할 나위 없는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남 씨는 그 취업자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남씨는 “돈도 급하지만, 입학에 이사까지 3~4월은 지나서 취업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무엇보다 아이의 적응이 우선이다”라고 말했다.
입학은 아이에게도 스트레스이다. 선배 맘들은 가능하면 이 시기의 환경의 변화를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안 그래도 부담감이 큰데 다른 변화까지 동반되면 아이가 힘들 수 있기 때문이다.
무리한 학원 스케줄과 엄마의 조급함, 아이는 멘붕된다
# 딸만 둘 둔 이아무개(39) 씨는 지난해 큰딸을 초등학교에 입학시켰다. 차분한데다 무엇을 해도 또래보다 월등히 뛰어난 딸만 생각하면 어깨가 으쓱했던 이 씨. 영어유치원을 다니며 오후에는 유치원 특별활동을 잘 활용했다. 입학 후에는 유치원보다 턱없이 빨리 끝나는 학교 시간도 이 씨에겐 딸의 공부를 연마시킬 절호의 기회처럼 느껴졌다. 늦어도 1시면 집에 오니 영어와 논술을 물론 기타 예체능 교육까지, 시키고 싶은 것이 많아졌던 것이다. 하지만 이 씨의 부푼 소망은 삼주도 채 되지 않고 사라졌다. 한 곳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졌던 유치원에 비해 매일 학교 갔다 영어 학원가고, 또 요일별로 달라지는 피아노, 태권도, 미술 등을 두세 개씩 왔다 갔다 한 딸아이가 버텨내지 못한 것이다.
이 씨는 “뭘 해도 잘 따라오던 아이가 어느 날 울면서 ‘엄마, 나 학원 안 가면 안 돼요?’ 하는데 정신이 번쩍 나더라고요. 결국 학원의 대부분을 접고 한약방에 가서 보약 한재 지어먹고 끝났어요” 라고 실토했다.
# 최아무개 주부도 아이가 입학했던 지난해 초는 다시 생각하기도 싫다고 했다. 최 씨는 ‘아이의 학습습관을 초반에 잡아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에 3월부터 문제집을 매일 아침에 꼬박꼬박 풀게 한 것은 물론, 오후에도 각종 사교육 일정으로 빡빡하게 하루를 관리했다. 최 씨는 ““내 아이만 뒤처지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에 아이를 자꾸 잡게 된 것 같다”며 “결국 아이가 이렇게 공부만 하는 학교는 안 갈 거라고 심하게 반항해서 공부 습관은커녕 아들과 사이만 나빠졌다”고 씁쓸해했다.
아이의 입학과 동시에 마음을 다잡고 ‘공부습관만큼은 제대로 만들어 줘야겠다’는 비장한 결심을 하는 학부모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아이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새로운 환경의 적응이다. 선배 맘들은 이구동성으로 “좀 더 여유를 갖고 아이에게도 숨 돌릴 기회를 주라”고 조언한다. 학교도 새롭고 친구들도 낯선 시기에 많은 양의 공부를 소화하라고 밀어붙이면 지쳐 떨어지기 쉽다. 공부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다. 장거리 경주란 사실을 잊지 말자.
학부모 모임, 꼭 참석하되 말은 조심조심
# 학부모 모임이 가장 잦은 시기가 바로 학기 초. 지난해 3월, 학부모 모임에 갔다 온 오아무개(42) 씨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첫 모임이라 아무래도 딱딱한 분위기를 녹이려고 이 씨는 애써 농담이나 우스갯소리까지 해가며 분위기를 주도했다. 내심 본인이 분위기를 띄운 것에 만족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지인으로부터 모임 이후 자신이 ‘별로 아는 것도 없으면서 설치는 엄마’로 찍혔다는 소리를 들었던 것. 오 씨는 “이럴 줄 알았으면 어색해도 말 안 하고 있을 걸 그랬다”며 속상해했다.
# 평상시 화려한 분위기에 다소 강해 보이는(?) 인상을 가진 정아무개(40) 씨도 마찬가지. “학부모 모임만 갔다 오면 뒷말이 무성했어요. ‘기가 세다’, ‘잘난 체한다’고 말이 많았죠. 속에 담아두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말을 바로 하는 직설적인 성격도 한몫 한 것 같아요.” 결국, 정씨가 선택한 해결책은 모임에 가면 있는 힘껏 성격 죽이고 얌전빼고 있다 오는 방법이다. 안 하던 짓을 하려니 좀이 쑤시기도 했지만 엄마 이름과 아이 이름이 같이 언급되는 세상이라 차라리 엄마의 이름이 오르내리지 않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 학부모 모임에 참석하는 것이 왠지 부담스러워 참석을 회피했던 이 씨의 경우는 또 다르다. 소극적인 성격에 남과 어울리기 쉽지 않아 3월 학부모 모임에도 참석하지 않았던 이 씨. 한 학기가 지나고서야 우리 애를 제외한 대부분의 아이가 팀으로 묶여 체험학습을 가고 정보도 공유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이 씨는 “학부모 모임에서 친해진 엄마들의 아이들끼리 같이 노니, 아무래도 우리 아이만 소외되더라고요”라고 뒤늦게 불참을 후회했다.
학부모 모임은 여러 사람이 모인 만큼 말이 많은 자리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반드시 참여하라고 한다. 모임을 통해 내 아이와 또래 아이들, 주변 상황과 다양한 정보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선배 맘들의 조언을 더하면 결론이 나온다.
“꼭 참석하되 아이를 생각해서 너무 튀지 않게 무난하게 자신을 어필하라. 진면목은 친해진 후에 보여줘도 늦지 않다.” 이래저래 어려운 3월이다.
주윤미 리포터 sinn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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