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학교 선생님 _ 역삼중학교 서성희 교사

“강남 학생들은 결코 메마르지 않았어요”

지역내일 2013-03-11

하늘을 보라. 어제와는 다른 하늘. 상처받은 과거는 발판이 되고 그것이 곧 미래의 거울이 된다. 입시 기계가 되어가는 강남 학생들을 가슴 뛰게 해준 말. 역삼중학교 서성희 교사의 이 한 마디는 학생들을 꿈꾸게 하기에 충분했다. 


영어 아닌 ‘언어’ 가르치는 사람
그는 고려대학교 영어교육학과에 재학 중, 호주 Melbourne대학교 교환학생이 됐다. 이후 호주 근처 남태평양의 타히티 관광국에서 관광기획 업무를 총괄하다 한국에 들어와 임용고시를 치른 뒤 교직의 길로 들어섰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언어의 중요성’과 ‘학생들의 가능성’이 대한민국의 미래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저는 언어를 사랑해요. 또한 아이들을 좋아합니다. 이 두 가지 조합이 지금의 저를 있게 한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어, 즉 말을 가르치는 교사, 그게 제 가슴을 뛰게 한 거죠.”
실제로 그는 영어, 프랑스어, 일어, 타히티어, 한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5개 국어 능통자다. 언어 습득은 상상력이 동원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 나라 문화를 이해하고 각기 다른 색깔을 찾아내면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학생들에게 다른 나라 문화와 언어를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2008년에는 미국령인 사이판 주지사에게 직접 편지를 써 ‘미래의 훌륭한 지도자가 될 한국 학생들에게 현지 공립학교에서 수업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달라’며 간곡히 요청했고, 추진 2년 만에 동부교육청 영어 수월성 교육을 받던 150명의 학생들에게 꿈같은 기회를 만들어줬다.
“저에게도 꿈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영어교과서를 지필하고, 영어교육의 공교육화를 위해 노력한 덕분에 미국 뉴욕 근처 뉴저지에 있는 공립학교 Nutley Middle School에서 6개월간 파견교사 연수 프로그램을 받게 되었죠. 당시 미국 교사들이 학생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며 초심으로 돌아가 진정한 교사의 역할을 다시금 곱씹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선진국의 창의적인 교육방식과 교사의 열린 마인드를 배우고 돌아온 뒤, 2011년부터 강남교육지원청 산하 강남영어교사 교과연구회의 회장을 맡으며 학생들에게 실질적으로 적용할 방법을 모색했다. 그의 이런 노력은 역삼중학교 영어수업 시간에 빛을 발했다. 


영어교육 제1번, 전두엽을 열어라
“상상만 해도 시원하네”, “그거 괜찮은 착각이다”, “왜 착각이야, 실제로 만들 수도 있지”, “이끼 끼고 금세 더러워져”, “맞아. 창문관리가 어렵잖아”, “그래도 있었으면 좋겠다.”
선생님은 그저 단 한 마디만 던졌을 뿐인데 학생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다. 심지어 저희들끼리 논쟁하며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불과 수업시작 1분 만에 벌어진 일이다.
“무더운 여름날, 교실 창문과 창문 사이로 빗줄기가 떨어지는 효과를 줄 수 있는 특수 창문이 만들어진다면 어떨까 하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 순간 학생들이 상상의 나래를 펴며 자신의 생각을 스스럼없이 꺼내 들더군요. 제 수업의 주인공이 된 겁니다. 이 5분간의 워밍업이 저는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질문이 교과서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도움닫기와 같은 이 시간이 수업 몰입도를 극대화시켜 나머지 40분을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래서 저는 영어교육 제1번으로 학생들의 전두엽을 열라고 말합니다. 매 수업마다 세 가지 이상의 질문을 준비해가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죠. 역삼중학교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제 질문 하나에 마음을 활짝 열고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입니다. 어떤 이는 공부만 하느라 강남 학생들이 메말랐다고들 하는데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바른 인성과 열린 사고방식을 가진 정말 멋진 학생들이죠.”
창의적인 교사란 바로 이런 모습이다. 입시에 매달려 점점 더 기계화 되어가는 학생들에게 공부가 즐거워지도록 문을 열어주는 일, 그것이 바로 공교육 교사의 힘이다.
“교원평가 때 학생들이 많은 댓글을 남겨주어 정말 감사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즐겁게 웃는 수업’이었어요. 아침에 학생들을 보면 엄마에게 꾸중 듣고 잔뜩 찌푸려 있는 모습들이 많이 보여요. 그땐 한번 크게 웃겨줍니다. 전두엽이 활짝 열리도록….”
과목이 아닌 언어로서의 영어를 가르치고 싶어 하는 그의 영어교육 철학을 다시금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학생들은 소통과 자극을 갈구한다
미국 학생들은 학교에 가는 것을 즐거워한다. 한국 학생들처럼 선행학습을 하지 않기 때문에 학교가 호기심 충만한 공간이자 진정한 배움터이기 때문이다.
“저는 그것이 미국 사회를 움직이는 저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현지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저는 창의적인 읽기(Critical Literacy)를 소통의 매개체로 활용했습니다. 이를 테면 동서양의 비슷한 문화와 접목해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해볼 수 있도록 자극을 주는 일이죠. 『콩쥐팥쥐』와 『신데렐라』, 『흥부와 놀부』와 『엄지공주』에 등장하는 계모와 제비의 동질성과 다른 각도로 바라보는 열린 사고의 장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러면 학생들은 제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은 지식과 상상력을 밖으로 끄집어냅니다. 정해진 답이 아닌, 스스로의 답을 찾아나가면서 자연스럽게 타인을 이해하고 서로 소통하는 방법을 알아가게 됩니다.”
역삼중학교에서도 그는 끊임없이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한 단원을 시작하기 전 ‘교과서 Preview Tour’를 하게 해 스스로 의미 있는 단어들을 직접 찾아보고 그에 얽힌 연결고리들을 생각해보는 식으로 교과서에 탐닉하게 만들었다. 단원이 끝날 땐 자유로운 형식의 ‘Term Paper’를 작성해 총정리 시간을 갖게 하고, 친구들과 서로 공유하며 자연스럽게 열린 사고를 유도했다. 이 모든 과정이 학생들의 생각을 촉진시켜 스스로 성장하는 자양분이 되리란 믿음을 굳건히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심이 통하는 교사, 소통하는 교사, 그것이 저의 영원한 숙제입니다.”
대한민국 공교육의 밝은 미래를 여는 핵심은 어쩌면 그가 말한 ‘숙제’가 아닐까.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내내 그의 마지막 말이 오랫동안 귓가에 맴돌았다.


피옥희 리포터 piokhee@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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