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자 교과서 여행-끝
다시 경주에서 새롭게 시작~
2년 넘게 유적지를 다니며 견문을 쌓아온 교과서 여행은 이번이 마지막 졸업 여행이었다. 원래 계획은 해남 땅끝 마을을 포함한 남도나 강화도였다. 하지만 장기간에 걸친 여행으로 지친 엄마들의 호응이 워낙에 낮은데다가 아이들의 상태도 갈수록 나빠지는 터라 부담 없는 경주로 목적지를 잡았다. 일 년에 몇 번씩이고 들르는 경주였으나 이번에 또 새롭게 방문한 곳이 있었으니 무궁무진한 도시임은 틀림없었다.
포석정에서 아이들과 함께
포석정에서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듣다
역사의 기록이라는 것이 무릇 강자의 기록이다 보니 잘못 전해져 내려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포석정이라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포석정은 신라의 왕이었던 경애왕이 화려한 연회를 벌이던 중 뜻하지 않은 후백제군의 공격을 받아 잡혀 죽은 곳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포석정 인근에는 적군이 알지 못하는 요새가 있었으니 그 곳에서 투항하다가 포석정으로 끌려 내려와 죽임을 당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한·중·일 포석정 가운데 술잔이 벽에 부딪히지 않고 끝까지 돌면서 내려가는 곳은 경주의 포석정이 유일하다는 점이다. 어떤 원리인지는 아직도 밝혀내지 못했다고 한다.
조상들의 뛰어난 솜씨에 뿌듯함을 느끼며 남산자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경주에 있는 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중 하나로 꼽히는 삼불사 입구길은 처음이었다. 입구에는 남산 계곡에 묻혀 있던 불상을 같이 모셔놓았다. 천진난만한 미소가 아름다운 불상이라는데 지붕아래 그림자에 가려 제대로 감상할 수가 없었다. 삼불상을 모셔놓은 기둥에는 누군가가 환한 미소를 띄고 있는 불상의 사진을 붙여놓았다. 이름 모를 길손 역시 그 미소가 안타까웠던 것이다.
포석정
태종무열왕릉 김춘추릉과 김유신릉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데 가장 큰 힘을 발휘한 두 인물은 바로 김춘추와 김유신이었다. 김춘추와 김유신은 당시 신라에서 소위 왕따(?)를 당하는 인물이었는데 김춘추는 집안이 성골에서 진골로 내려앉아서이고 김유신은 김해 출신인 까닭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차곡차곡 준비해나간 끝에 김춘추는 왕이 되었고 김유신 또한 사후에 흥무대왕으로 추존될 수 있었다.
경주 김씨와 김해 김씨는 그다지 사이가 좋지 못했다. 1934년에 세워진 김유신 장군의 묘비에서도 알 수 있다. ‘릉’(陵)자가 새겨진 곳을 교묘하게 파내고 시멘트로 메운 뒤 그 위에 ‘묘’(墓)자를 새겼다. 그래서 묘비에 물을 묻히면 ‘릉’자가 ‘묘’로 바뀌는 신기한 현상을 볼 수 있다. 왕의 무덤에는 ‘릉’이, 백성의 무덤에는 ‘묘’가 붙기 때문에 사이가 좋지 않은 후손들이 그리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릉’자에 물을 부으면 ‘묘’자로 변하는 김유신장군묘비석
노블레스 오블리주 경주 최부자집
3대 가는 부자 없다는 옛말은, 경주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경주 최부자집이 있기 때문이다. 300년이 넘는 세월에 12대를 거치며 만석 재산을 지켰고 9대에 걸쳐 진사(進士)를 배출한 명문가가 경주 교동 최씨 집안이다. 최부잣집에 내려오는 여섯 가지 가훈이 있다. 만석 이상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흉년이 들면 땅을 늘리지 말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주변 100리 안에 굶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 등 근검절약과 사회공헌의 가치를 전파하는 내용이었다.
근처에는 마약(?) 김밥으로 통하는 김밥집이 있었다. 맛나다는 김밥을 사기 위해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우리 일행도 맛을 봤다. 계란이 엄청 많이 들어가고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맛이 일품인 김밥이었다.
신라 내물왕릉을 방문하는 것으로 하루 일정은 끝이 났다. 마지막 행사는 수료식이었다. 20분가량 아이들의 발자취가 담긴 영상물을 상영했다. 4학년 말부터 첫 여행을 시작으로 아이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차례로 지나갔다. 예전에는 슬픈 배경음악이 깔려 엄마들이 많이 울었더란다. 이번에는 슬픔은 쏙 빼고 즐겁고 경쾌한 음악이 화면을 채웠다. 그래도 어느새 훌쩍 자란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울컥하는 마음은 숨길 수가 없었다.
이틀째는 경우월드였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마냥 신이 나서 돌아다녔다. 초등학교 꼬맹이 시절은 다갔다. 이제 중학생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교과서여행이 자양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3년여에 걸친 일정은 끝을 맺었다.
남산자락에 모셔져 있는 ‘배리석불입상’
이수정 리포터 cccc09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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