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oter’s Book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
다산책방 출판
발매 2012. 3. 26.
가격 12,800원
“인생에 대해 내가 알았던 것은 무엇인가, 신중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았던 내가. 이긴 적도, 패배한 적도 없이, 다만 인생이 흘러가는 대로 살지 않았던가. 흔한 야심을 품었지만, 야심의 실체를 깨닫지도 못한 채 그것을 위해 섣불리 정착해버리지 않았던가. 상처받는 게 두려웠으면서도 생존력이라는 말로 둘러대지 않았던가. 가능한 한 모든 사람들과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았을 뿐, 환희와 절망이라는 말은 소설에서나 구경한 게 전부인 인간으로 살아오지 않았던가. 자책을 해도 마음속 깊이 아파한 적은 한 번도 없지 않았던가. 이 모든 일이 따져봐야 할 일이었고, 그러는 동안 나는 흔치 않은 회한에 시달렸다. 그것은 상처받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쳤던 인간이 비로소 느끼게 된 고통, 그리고 바로 그랬기 때문에 느끼게 된 고통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모두 사실일까?
우리는 과거의 한 부분에 대해 그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기억은 왜곡된 것일 수도 있고, 내가 바라던 이상을 마치 사실처럼 기억하는 것일 수도 있다. 주인공 토니는 꽤 괜찮은, 평균의 삶을 살았다고 만족하며 평화로운 노년을 보내던 중 우연히 배달된 편지로 인해 이십 대의 나, 내가 기억하고 있던 나와는 너무 다른 나를 맞닥뜨린다. ‘젊은 시절의 자아가 노년의 자아를 찾아와 그 시절에 혹은 그 이후에 내 깜냥이 어떠했는지’를 알리며 나를 충격에 빠뜨린 것이다.
토니가 ‘가능한 한 모든 사람들과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았던’ 이유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둔 거리가 아닐까? 그냥 적당히 무난한 관계라면 상처받을 일이 생겨도 ‘괜찮아~’하며 쿨하게 넘길 수 있을 테니까. 그 옛날 에이드리언과 베로니카의 일도 무난하게 넘겼다고 기억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자기는 그때 괜찮지 않았고, 크게 상처받았고, 그 분풀이로 이런 무서운 말들을 뱉어냈었고, 그리고 그 기억을 지웠던 것이다.
토니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신을 지켜봐온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자신을 증명해줄 것도 줄어들고 있음의 불안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래서 말로든, 소리로든, 사진으로든 기억을 남겨 두려하지만 그 기록이 전혀 엉뚱한 것이라면 나는 엉뚱하게 기억될 뿐이다. 그렇다면 역사는 어떨까? 에이드리언이 했던 말,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다’라는 말이 마음에 깊이 남는다.
박혜준 리포터 jenna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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