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시민들을 위한 행복한 설날 만들기 프로젝트
설날을 맞는 풍경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하지만, 매년 3000만명 이상의 국민들이 설 연휴기간 동안 대이동을 합니다. 오랜만에 친척들을 만나고 선물을 주고받고 덕담을 나누고….
자식들은 부모님을 만날 생각에, 아이들은 세뱃돈 받을 생각에 마음이 들뜨기도 합니다. 하지만 차례음식부터 가족들 먹거리까지 책임져야 하는 주부들은 명절 스트레스는 이만저만 아닙니다.
그래서 안산 내일신문이 준비했습니다. 설날에 대한 의미부터 명절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방법까지.
민족의 최대 명절인 설이 다가왔다. 설하면 세배와 덕담, 까치, 떡국, 윷놀이 등이 생각나다. 그런데 설날은 언제부터 시작됐고, 왜 세배를 하고 덕담을 나누고 떡국을 먹을까? 과연 우리는 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설과 관련된 상식들을 모았다.
‘설날’의 어원은 어떻게 될까?
우리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날’. 이 ‘설날’이라는 이름의 어원에 대해서는 크게 3가지 정도의 의견이 있다.
먼저 설날을 ‘낯설다’의 어근인 ‘설’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설날은 ‘새해에 대한 낯설음’이라는 의미와 ‘아직 익숙하지 않는 날’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두 번째는 처음 시작이라는 뜻의 ‘선다’라는 말에서 비롯되어 시간이 흐르고 연음화(連音化) 되면서 ‘설날’로 되었다는 설이다.
마지막은 ‘삼가다(謹愼)’나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라는 뜻의 옛말인 ‘섧다’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설날을 한자어로 ‘신일(愼日)’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신일은 ‘삼가고 조심하는 날’이란 뜻인데, 이는 완전히 새로운 시간 질서에 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언행을 삼가고 조심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설날’은 어제부터 시작됐을까?
설이 언제부터 우리민족의 최대 명절로 자리 잡았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다만 설을 명절로 삼기 위해서는 역법(曆法)이 제정되어야만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적어도 6세기 이전, 중국에서 태양태음력을 받아들인 이후 태양력을 기준으로 제정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설, 정월 대보름, 삼짇날, 팔관회, 한식, 단오, 추석, 중구, 동지를 9대 명절로 삼았다. 또 조선시대에는 설, 한식, 단오, 추석을 4대 명절이라 했다. 이런 점들을 미루어 볼 때 이미 이 시대에는 설이 오늘날과 같은 우리 민족의 중요한 명절로 확고히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설이 민족 대명절로 온전히 자리 잡은 것은 불과 20여년 전이다. 1895년 을미개혁 당시 양력 1월 1일이 공식적인 양력설로 지정되고, 이후 일제강점기에서 조선의 문화말살정책이 진행되면서 음력설은 위기를 맞는다. 또한 1980년대 중반까지 음력 설은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는 풍습으로 간주됐으며, 공휴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1985년에 음력설에 ‘민속의 날’이라는 명칭을 붙여서 처음으로 공휴일로 제정하고 하루를 쉬었다. 이후 1989년부터 민속의 날을 ‘설날’로 개칭하고 사흘로 연휴 기간을 늘렸다. 1991년부터는 신정 휴일을 사흘에서 이틀로, 1999년부터는 하루로 줄임으로써 음력설이 양력설과의 오랜 경쟁에서 우위를 지니게 되었다.
설날 세시풍속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설날의 세시풍속으로는 차례, 세배, 설빔, 덕담, 문안비, 설그림, 복조리 걸기, 야광귀 쫓기, 청참, 윷놀이, 널뛰기, 머리카락 태우기 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세배 = 설날 차례를 마친 뒤 조부모·부모에게 절하고 새해 인사를 올리며, 가족끼리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절하는데, 이를 ‘세배(歲拜)’라 한다. 세배가 끝나면 차례를 지낸 설음식으로 아침식사를 마친 뒤에 친척과 이웃 어른들을 찾아가서 세배를 드린다. 세배하러 온 사람이 어른일 때에는 술과 음식을 내어놓는 것이 관례이나, 아이들에게는 술을 주지 않고 세뱃돈과 떡, 과일 등을 준다.
덕담 = 덕담(德談)은 설날에 일가친척들과 친구 등을 만났을 때 “과세 안녕히 하셨습니까?”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 등과 같이 소원하는 일로 서로 축하하는 것을 말한다.
복조리 = 설날 이른 아침이나 섣달 그믐날 밤 자정이 지나서,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어 엮어서 만든 조리를 사서 벽에 걸어 두는 습속이 있는데, 이것을 ‘복조리’라고 한다. 이러한 풍속은 조리가 쌀을 이는 기구이므로 그해의 행운을 조리로 일어 취한다는 뜻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설날에 1년 동안 사용할 조리를 그 수량대로 사서 방 한쪽 구석이나 대청 한 귀퉁이에 걸어 두고 하나씩 사용하면 1년 동안 복이 많이 들어온다는 민간 신앙도 있다.
야광귀 쫓기 = 설날 밤에 야광(夜光)이라는 귀신이 인가에 들어와 사람들의 신을 신어 보아서 자기 발에 맞으면 신고 간다는 속설이 있는데, 신을 잃어버리면 신 임자는 그해 운수가 나쁘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과 어른들이 모두 신을 방안에 들여놓는다. 야광귀를 막기 위해 대문 위에다 체를 걸어 두는데, 이것은 야광귀가 와서 체의 구멍을 세다가 신을 신어 보는 것을 잊어버리고, 새벽닭이 울면 물러가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떡국은 왜 먹을까?
설날 아침에 떡국을 먹는 이유는 순백의 떡과 국물로 지난해 안 좋았던 일을 모두 잊고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흰 가래떡을 길게 뽑는 이유는 장수와 집안의 번창을 의미하고, 가래떡을 둥글게 써는 이유는 옛날 화폐인 엽전의 모양과 같아서 운세와 재복이 한해 동안 계속 되기를 기원하는 소망이 담겨있다. 요즘은 떡국을 끓일 때 쇠고기나 닭고기를 많이 넣지만, 예전에는 꿩고기를 넣어 만들었다.
떡국을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 따르면 설날에 떡국을 먹는 풍속은 매우 오래된 것으로 상고시대의 신년 제사 때 먹던 복음 음식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쓰여 있다.
자료제공 : 국립민속박물관
이춘우 phot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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