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에피소드 1> 기억에 남는 설날 이야기

“영화표 한 장에 녹아내린 마음”

지역내일 2013-01-30
작년 설날 때 일입니다. 대구에 살던 저는 결혼과 함께 낯선 안양으로 올라와 살게 됐어요. 교사가 직업인 저는 옮긴 학교에 적응하느라 쉽지 않은 날을 보냈고, 남편은 야근에 해외출장이 잦아 저의 신혼은 달콤하기보단 ‘그리움의 신혼’이었지요. 고향에 두고 온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 오롯이 함께 할 수 없는 남편에 대한 아쉬움 등 ‘내가 결혼을 왜 했지?’라는 생각이 수없이 올라왔어요. 그러다 설날을 맞게 됐습니다. 결혼하고 첫 설인데다 친구들로부터 시집의 설날 억울함에 대해 들었던 터라, 설날이 다가올수록 두려움과 막막함이 밀려오더군요. 시댁이 서울이어서 귀성길에 시달릴 일은 없었지만, 늦게 갈 핑계도 댈 수 없는 근거리라 아쉽기도 하더군요.
시댁에 도착해 어머님과 음식준비를 하며 어색하고 불편한 시댁에서의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식구가 많지 않은데도 금방금방 쌓이는 설거지는 전부 며느리인 제 몫이었고, 남편도 전혀 도와주지 않더군요. 식사할 때는 시어머니와 제가 아버님과 남편 등 다른 식구들이 다 먹을 동안 옆에 서서 시중들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너도 앉아 먹어라’ 하셨지만, 어머니가 시중드시며 안 드시는데 며느리인 제가 어찌 먹겠습니까. 남자들 식사 다하고서야 어머니랑 앉아 남은 반찬에 한술 떴습니다. 그 순간 친정엄마가 너무 보고 싶고, 솔직히 먹는 거로 차별받나 싶어 서럽기까지 하더군요. 



그렇게 힘들어하며 집에 갈 때만을 기다리는 제게 남편의 남동생, 즉 시동생이 영화표 두 장을 건네더군요. “형수님, 힘드시죠? 아침도 먹었으니 형이랑 근처 극장가서 영화 한편 보고 오세요.”
말수가 적고, 결혼도 안한 시동생이 갑자기 그러니 당황스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나가도 되나 갈등도 되는데, “엄마, 형수랑 형이랑 영화 한편 보고오라고 해도 되지? 둘이 여기 있으면 뭐해. 나갔다 오라고 하자” 이러는 겁니다. 시어머니도 순간 안 된다 하실 수도 없으셨던지, “그래, 다녀와라” 하시더군요. 시동생이 윙크를 찡긋하며 제 손에 영화표를 쥐어주고, 남편에게도 서둘러 준비해 나가도록 재촉해 주어 우리 부부는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나와서 한숨을 쉬니, 남편이 제 손을 꼭 잡고 “힘들었지? 미안해” 하더군요. 순간 울컥 하는 걸 참고, 남편 팔짱 끼고 영화관 가서 영화도 보고 팝콘도 먹으며 시댁에서의 긴장한 마음을 풀었습니다. 결혼도 안한 시동생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고마운 마음에 시댁에 꽁했던 마음도 풀어지더군요.
올해도 설날에 시댁을 갑니다. 올해는 설날에 아침 먹고 모든 식구가 함께 영화 보러 가려고 합니다. 남편과도 상의했고, 영화표도 구해 두었습니다. 즐거워 할 가족들 모습에 설날이 기다려집니다.       
이지영(32 가명 안양시 안양6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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