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주 시작의 가장 첫 단계는 보편적으로 입원 생활이다. 금단 증상에 대한 해독치료가 끝나고도 해야 할 일들이 많다. 치료프로그램이 아무리 충실해도 술을 끊은 지 상당한 기간이 지나야만 술에 젖었던 뇌가 깨끗해질 수 있다. 단주가 꾸준히 이어지고 매사를 조금씩 더 깊이 파악할 수 있게 되면, 이 단계에서 해야 할 정신적 과업들이 많다. 다음의 것들이 대표적이다.
우선 겸손해야 한다. 지난날 아무리 떵떵거리는 입장이었다 해도 이제는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로 바뀐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남의 말 잘 듣기이다. 독단과 아집을 버리고 남의 이야기를 잘 경청해야 한다. 지난날 술집에서처럼 완강하게 자기 이야기만 고함치듯 소리 높여 외칠 것이 아니라, 더 많이 듣고 더 깊이 생각하고 더 잘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솔직하게 술과 삶에서의 실패를 인정하고 술과 담을 쌓는 생활로 전향한다. 배우자를 비롯하여 주위 사람들과 늘 승부적으로 관계를 맺고 승패를 나누려는 듯한 인간관계를 고친다. 패러다임을 전환하여 협력과 상부상조의 태도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모든 것을 자신이 통제하려 하고 모든 책임을 혼자 짊어지려고 하기보다는 배우자, 단주의 선배나 동료, 담당 의사, 직장의 상급자, 나아가서는 지고의 절대자에게든 누군가에게 믿고 맡기고 기다려보는 것이 좋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져야 한다. 남을 기만하기에 앞서 자기 스스로를 늘 기만하고 살아오던 삶을 되돌아보고 바뀌어야 한다. 정신과에 입원까지 한 마당에, 그저 단순하고 무식하게 그리고 무서울 정도로 솔직해야 한다고들 한다.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여건이 아무리 열악하다 해도, 이를 부정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악의 위기에서도 희망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고 하지 않은가. 그러나 그 희망의 끈을 찾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몫이다.
지난날의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 자신의 일과 삶에서 무엇이 더 중요하고 우선인지를 다시 생각하고 그 순서와 진정한 가치에 대해 깨달아야 한다.
자신만큼은 남과 다르다는 오만에서 벗어나, 모든 점에서 사람들은 너무나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공통적인 그 근본 문제를 찾아낸다. 그때쯤이면 더 심각한 동료들을 백안시하고 거부하던 데에서 벗어나 그들을 더 깊이 이해하고 기꺼이 손을 내밀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입원생활이 이런 식으로 바뀐다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면서 회복으로 나아간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강원알코올칼럼상담센터 신정호 소장(원주연세대 의대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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