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K군이 해병대를 전역하면서 저희 사무실을 찾아왔다. 무사히 군생활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감사인사를 하러 온 것이다. K군은 미국에서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닐 때도 항상 방학이면 찾아와서 감사 인사를 하곤 했다.
만약에 카츄사나 통역병으로 제대하면서 인사를 왔다면 이상하지 않을 터이지만 해병대 들어간 것 조차 교환학생 다녀온 덕이라 하니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K군은 솔직히 교환학생 이후 인생이 달라졌다.
교환학생 출신이면서 해병대를 간 까닭
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1년, 사립교환으로 바꾼 후 2년을 더 공부해서 인디애나주립대 경영대(켈리스쿨)을 들어간 K군이므로 험난한 해병대를 지원한 것은 오히려 의외였다.
“미국에서 유학했으니 통역병이나 카츄사를 지원하면 누구나 당연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장 희망하는 직장은 세계경제를 주름잡는 맨해튼의 금융기업이다. 그들이 원하는 남다른 스펙을 위해서, 또 학교 이후의 험한 사회생활을 위한 단련을 위해서 오히려 해병대를 자원했다”는 것이다.
K는 해병대 제대 이후 본인의 진로 플랜을 이미 10년 후까지 짜 두었다. 대학 4학년을 마저 끝낸 후 맨해튼의 금융기업에서 2-3년을 근무한 후 한국 금융업으로 자리를 옮기거나 하버드, 유펜 등 저명한 IVY 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세계적인 금융전문가가 되는 게 목표라고 한다.
독립심, 삶의 진지함까지 가르쳐 주는 교환학생
불과 20대 중반의 젊은이가 이렇게 속 깊고 멀리 자기 인생을 진지하게 내다보게 된 데는 교환학생이란 경험이 큰 역할을 했다.
처음 K를 만났을 때 그는 반항적 고등학생이었다. 민사고 입학에 실패하고 방황하여 무척 혼란스러웠던 그는 명문대 진학만 강조하는 한국 교육에 대한 반감으로 학업에 손을 놓다시피 한 상태였다. 그런데 K의 어머니께서 지혜로우셨다. 어머니께서 그의 삶의 새로운 전환점으로 교환학생 참가를 생각하신 것이다.
K는 이후 놀라운 집중력으로 미국고교 2,3년 과정을 마치고 미국 경영대 랭캥 10위 이내의 명문 인디애나 주립대 경영대를 합격하였다. 대학 진학 후에도 방학마다 영국, 스위스, 한국의 펀드회사 인턴 등을 체험하면서 글로벌 기업에서 경영공부를 이어왔다.
그가 이러한 변화는 기적에 가깝다. 고교 시절 그는 어떠한 비전도 갖지 못하고, 아버지와 갈등하고, 어두운 친구들과의 관계를 벗어나지를 못했다. 하지만 미국 교환학생 참가는 그런 모든 잘못된 길과의 단절, 본인이 꿈꾸던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한 단초를 제공한 셈이다.
손 재 호
애임하이교육㈜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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