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L 두뇌코칭센터 손명현 원장
아래와 같은 문장을 초등학교 6학년생이 읽는다고 가정해보자.
“인류의 역사에서 20세기 말은 아마도 과학 기술 혁명의 시대로 기억될 것이다. 이 시기에 물리학은 물질을 원자 수준에서 이해하고, 생물학을 분자 수준에서 설명하는 데 탁월한 성과를 거두었다.” (출처-나노기술 축복인가재앙인가)
어떤 학생은 인류라는 글을 읽자마자 머리가 아플 수도 있고, 어떤 학생은 과학이라는 단어에만 필이 꽂힐 수도 있으며, 또 다른 학생은 ‘너무 뻔하고 쉽네’라고 미리 판단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위의 문장이 아이의 머리를 즐겁게 만들 수는 없을까?
‘20세기 말이 과학 기술 혁명의 시대’에서 분명히 20세기 말 이전과 그 이후가 다르다는 저자의 의도가 있을 것이다. ‘이 시기에 물리학은 물질을 원자 수준에서 이해하고’에서 원자 단위에서는 기존의 방식과 다른 새로운 물리학이 생겨남을 알 수 있다. ‘생물학을 분자 수준에서 설명하는‘에서도 마찬가지로 결국 기존의 과학의 원리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는 점이 아이의 머릿속에서 그림으로 전개되어 나갈 것이다. 즉, ‘why? why?’ 방식으로 순차적으로 생각하면서 읽어나가면 머리가 생동감 있게 움직이면서 동시에 지적인 즐거움을 갖게 된다. 물론 초기 단계에서는 머리가 좀 아플 것이다. 마치 테세우스가 실타래를 고통스럽게 쫒아가지만 결국은 미로를 극적으로 탈출하는 기쁨을 맞이하는 것처럼.
그렇다면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대다수의 우뇌학생들은 어떻게 이 즐거움에 도달할 것인가? 우뇌성향의 학생들은 주관적으로 글을 읽거나,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거나, 아예 읽지를 않는다. 따라서 교육자는 아이가 실 뭉치를 한꺼번에 내던지지 않고, 하나하나씩 풀어나가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현상은 우뇌 아이들이 한 번 지적 즐거움을 알게 되면, 이 습관에 빠른 속도로 적응하게 될뿐더러, 수학에 대한 흥미도 높아져간다.
이러한 사례는 본 교육원에서 흔하게 접하는 현상이다. 즉, 힘겹게 도달해서 얻은 좌뇌의 경험이 뇌량을 통해서 우뇌에 확산적으로 전달되어, 생각하는 즐거움을 기억 속에서 간직하고 계속해서 그 방향성을 쫓아가게 된다는 의미다. 이런 의미에서 트렌드 위주보다는 동서양 고전 및 인문, 사회, 자연과학의 원리 및 저자의 생각이 정교하게 반영되어 있는 책이 읽기에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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