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은퇴 후 40년을 더 살아야 하는 고령화 시대다. 전문가들은 은퇴 후의 안정된 삶을 위해 지금 당장 무언가를 준비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준비’에 대한 남편과 아내의 생각은 사뭇 다르다. 그들의 다른 생각을 남편과 아내, 각자의 입장에서 들어 보았다.
남편들은 왜! 자기사업을 하고 싶은가
▶안명수(가명/안양 관양동) : 전 올해 나이 40세로 아내와 초등생, 유치원생 아이 둘의 아빠입니다. 안양에 있는 중견기업에서 홍보 관련업에 종사하고 있지요. ‘내 사업해야지’ 하고 생각한지 한 2년 됐습니다. 제가 일하는 분야가 변화가 아주 심하거든요. 변화에 빨리 적응하지 못하면 금방 도태되는데 어느 순간부터 적응에 한계를 느꼈습니다. 지금 준비해서 미래를 대비하지 않으면 이도 저도 안 되고 위기를 맞을 것 같아 ‘내 사업을 하자’고 결심했어요. 친구가 유통업을 해서 성공했는데, 요즘 그 친구로부터 노하우를 배우고 있어요. 조만간 저도 유통업에 뛰어들어 볼 생각입니다.
▶조성호(가명/의왕 내손동) : 전 올해 39세로 대기업에 다니고 있습니다. 아내와 유치원생 아들 둘이 있어요. 최근 아내에게 회사를 그만두고 내 일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내가 적잖이 충격을 받아 고민 중입니다. 저도 처음엔 직장에서 열심히 일해 임원되고 사장되자 생각했어요.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직장에서의 성공은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어떤 한계가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리고 직장에서의 제 미래라고 할 수 있는 상사들이 비전을 주기 보다는 윗사람 눈치보고 아래 직원들 들들 볶기나 하는 걸 보면서 절망했죠.
그뿐인가요? 회사가 평생고용을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잖아요. 사정이 어려워지기라도 하면 잘라낼 생각부터 하는 게 회사더라고요. 이런 이유들이 직장생활을 불확실하게 하고, 하루라도 빨리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만의 자리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했습니다.
전 지금 회사를 그만두고 할 수 있는 일을 구체적으로 찾는 중입니다. 2년 안에 그만두고 서비스업에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아내들은 불안하다. 이 불황에 꼭 해야 하는가.▶서은미(가명/안명수씨 아내) : 저희 남편은 1~2년 전만해도 별 말이 없었거든요. 근데 40대로 접어들자 자기 사업이 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더니 최근엔 관련 서적을 구해 읽거나 강의를 듣는 등 구체적인 준비를 시작하더라고요. 요즘 같은 불황에 왜 꼭 자기사업을 해야 하는 지 정말 이해가 안가요.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잖아요. 그리고 자기 사업을 하면 돈을 쌓아놓지 않는 한 경제적 타격이 불가피하고, 실패하면 길거리에 나앉을 지도 모르는데 남편이 그것에 대한 대책은 있는지 확신이 안섭니다. 아이들 크면서 돈들 일은 늘어나는 데 도대체 남편이 저랑 아이들을 생각하기는 하는 걸까요?
▶이경미(가명/조성호씨 아내) : 전 남편을 많이 지지해주고 이해해주는 아내라고 자부하며 살아왔어요. 근데 최근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고 자기 일을 해보고 싶다고 말해 충격 받았어요. 남편은 그동안 대기업 다니면서 안정적으로 살아왔고, 그 덕에 우리 가정도 큰 어려움 없이 지내왔는데 갑자기 그걸 버리겠다고 하니 놀랄 수 밖에요. 전 남편이 직장에서 승진하고 성공하길 바랬거든요.
미래를 위해 조금이라도 더 젊었을 때 비전 있는 나만의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남편의 생각이 틀렸다는 건 아니지만, 확실한 구상과 대책이 없다면 적극적으로 지지해 줄 수 없어요. 서비스업에 도전하겠다는데 어떤 아이템으로 어떻게 일할 건지는 아직 정해져 있지 않더라고요. 그러니 더 불안해요. 솔직히 계속 안정된 직장 생활을 했으면 좋겠어요.
남편들은 아는가 아내의 불안함을?
▶안명수 : 저도 지금 당장 뛰쳐나가 무작정 저지르겠다는 게 아닙니다. 아내가 무얼 두려워하는지 잘 알고 있어요. 그리고 공감합니다. 친구들끼리 모이면 누구는 성공 했다더라 누구는 말아 먹었다더라 그런 얘기하면 현실이 녹록치 않구나 생각도 들죠. 그래도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이제 100살까지 살아야 하는데, 60세도 되기 전에 회사에선 나가야 할 테고, 나머지 40년은 내가 알아서 먹고 살아야 하는데 그때를 위해서라도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노후에 손가락만 빨 수도 있거든요.
▶조성호 : 아내의 충격에 저도 생각이 많아졌어요. 아내와 더 많은 대화를 하면서 제 생각이나 계획에 대해 이해받아야겠다고 결심도 했고요. 전 새로운 일을 해야지 생각하면서 삶에 활기를 찾았어요. 다시 꿈이 생기고, 인생이 기대도 되고, 그동안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잊고 있었던 내 자신의 존재감도 다시 자각하게 되고. 이런 변화된 모습을 아내도 분명 느낄 거예요. 지금 아내가 변화에 대해 두려워한다는 걸 알지만 그렇다고 제 계획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아요. 결국 이 모든 게 우리 가정을 위한 일이니까요.
▶서은미 : 제발 신중하게 한 번 더 생각해 보길 바래요. 그리고 할 거면 나부터 이해시키고 시작하세요. 아내도 이해 못시키면서 일반 대중들을 이해시키는 사업을 어찌 성공하겠어요?
▶이경미 : 남편들은 꼭 가정을 위한 일이라고 말해요. 정말 가정을 위한다면 아내의 충고나 의견도 귀기울여주세요. 아내도 가정을 위해 말리는 거랍니다. 하지만 인생 2막을 준비하는 건 저도 적극 동참할게요. 가정을 위해 힘든 짐은 나누어 져야죠.
인생 100세 시대. 우리 앞에 던져진 이 화두는 오늘을 살아가는 세대에 다양한 고민을 던져주고 있다. 전문가들도 100세 시대는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혹독한 겨울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철저한 준비만이 겨울을 이기는 지혜가 될 것이라고 충고한다. 부부가 서로 이해하고 힘을 합쳐 준비할 때, 행복한 100세 시대의 미래는 열릴 것이다.
이재윤 리포터 kate257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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