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주를 하자면 잘 먹어야

지역내일 2012-11-09

 단주를 시작할 때 오로지 술만이 문제인 줄로 아는 수가 많다. 사실은 술을 제외하고도 인생의 여러 가지에 대하여서도 잘 살피고 챙겨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중에서도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잠자기와 먹는 것이다.
   잘 알다시피 수면욕이나 식욕은 성욕과 더불어 가장 두드러진 인간의 본능이다. 단주 초기에는 거의 본능에 가까운 정도의 음주갈망을 오로지 의지력만으로 이겨내려는 수가 흔하다. 이는 부질없는 헛된 노력일 뿐이다. 인간 본능의 특성을 인정하고 그에 맞추어 적절하게 대처하여야 길이 단주의 길이 열릴 것이다.
   단주 초기에는 허기를 피하고 피로를 피하라는 조언을 자주 듣게 된다. 그러자면 잘 먹어야 한다. 여기에서 잘 먹으라는 뜻은  절대로 좋은 음식이나 비싼 음식을 먹으라는 것이 아니다. 배가 고프고 피곤하면 무어라도 얼른 먹으라는 것이다. 어른이 되어 가지고 조금 배고픈 것을 참지 못한다고 하면 안 된다. 아무리 일이 밀렸다 해도 끝내고 먹으려 하지 말라는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이겠다고 기다리게 하기보다는, 식은 밥으로라도 얼른 배를 채우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고 단지 칼로리만 생각하고 단 것만으로 해결하려는 것도 잘못이다.
    입이라고 하는 것은 단지 영양섭취 기능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복잡한 감정적 문제를 처리하는 퍽 구체적 표현 기관이기도 하다. ‘입술을 삐쭉거린다’ ‘씹어댄다’ ‘물어뜯는다’ ‘못 잡아먹어 이를 간다’ ‘입이 한자나 나왔다’와 같은 말에서 보듯이 분노나 공격성과 같은 격한 부정적 감정을 표현하는데 매우 유용하다. 무언가 화가 치밀어 미칠 것 같을 때 질겅질겅 오징어를 씹으면 조금은 마음이 풀릴 수도 있다. 입은 또 의존성과 같은 감정을 표현하고 발휘하는 데도 유용하다. 사람들은 사랑이나 관심, 배려와 같은 긍정적 정서를 먹고, 마시고, 빨고, 핥는 식품이나 음료, 그리고 그러한 행위로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허기만이 아니라 무언가 감정적 요인에 의한 음주 욕구를 해결하는 데에도 매우 중요하다. 사실 잘 단주하다가 다시 재발로 굴러 떨어지는 가장 흔한 이유는 감정적 원인이 아니던가?
   그밖에도 잘 먹어야 한다는 것은 하루의 일과를 규칙적으로 한다는 것, 매사에 양과 질의 균형이 잡혀야 한다는 의미도 있다. 제 시간에 식사하고 간격이 일정해야 한다. 취해야 겨우 잠들었던 습관으로 잠이 안 오면 술 생각이 나기 마련이니까, 너무 일찍 저녁 식사를 하면 배가 고파 잠이 얼른 들지 않고 이는 술 생각을 불러오기 쉽다.
   지난날 으레 맵고, 짜고, 뜨겁고, 기름진 자극적인 음식만 즐겼다면, 단주하기로 한 이상 가능한 덜 자극적인 담백한 음식에 길들이는 것이 좋다. 술과 어울리지 않는 칼국수, 보리밥, 쌈밥, 나물밥, 묵밥 같은 것이라면 술 생각이 날 리가 없다. 반찬 또한 흔히 육류보다는 신선한 야채와 생선, 각종 나물, 콩졸임, 장아찌, 멸치, 생두부, 콩나물, 아욱, 토란 국 같은 것들에 입맛을 깃들이면 참 좋을 듯하다. 

강원알코올상담센터 신정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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