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때 술 안 마시기

지역내일 2012-09-20

설날, 추석, 연말이나 연초와 같은 특별한 날은 이제 갓 단주를 시작한 사람들에게 큰 위기가 아닐 수 없다. 평소에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조차도 이 시기에는 술자리를 벌이는 수가 많고, 송년회나 종무식과 같은 행사를 치르면서 여기저기 술이 넘쳐나고 조금은 지나친 음주도 용납되는 분위기가 흔하다.
이런 시기가 특별히 더 힘든 이유 중에 하나는 과거에 이러한 날이면 언제나 예외 없이 술친구들과 어울려 흥청망청 마시고 취한 상태로 이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평소에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과도 연락하여 같이 어울려 즐겁게 지내는 시기에 어떻게 지내야 할 지 난감하기만 하다. 술 없이 맑은 정신으로 명절을 즐겁게 보내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무엇을 하며 지내야 할 지 막막하다.
명절 동안에 막연히 마시지 않겠다고 혼자 다짐만 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다. 명절 시기 동안 시간표를 짜서 활동 계획을 세우고 이에 따라 생활한다. 자신의 단주를 도와주는 가족이나 단주 선배동료에게 자신의 계획을 알리고 연락 체계를 만든다. 그리고 위기에 빠질 때는 물론, 하루에 한 두 번씩 전화로라도 연락하기로 한다.
만약에 모임이나 술자리에 가야만 할 일이 있다면 미리 탈출 계획을 세운다. 예를 들어 같이 참석하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조금이라도 음주 갈망을 느끼거나 위험하다면 굳이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아무 말 않고 나가겠다고 미리 알린다. 함께 나와 주기를 요청할 수도 있다. 대신에 기분을 달랠 장소들, 예를 들어 영화관이라든가 커피집과 같은 대안적 장소를 미리 물색해 두는 것도 필요하다.
명절 때면 여러 가지 음식들을 접하게 되는 수가 흔하다. 이중에는 바로 술로 취급되지 않지만 술이 섞인 음료나 음식도 있다. 소량의 위스키를 속에 넣은 초코렛, 펀치 음료, 알코올 성분을 남아있는 음식들도 있다. 금단 상태였던 뇌의 알코올 수용체는 미량의 알코올 기운일지라도 예전의 바로 그 맛과 냄새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여 즉시 알코올에 대한 강렬한 갈망을 일깨울 수 있으므로 주의하여야 한다.
그 날이 명절일지라도 정해진 요일이라면 알자회 같은 단주 모임은 계속 열린다. 명절이니까 모임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나오는 것이 좋다. 단주가 아직 초기라면 음주 갈망으로 힘들지 않아도, 정해진 단주 모임 시간에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일이 있으나 없으나 빠지지 않고 참석하여 생활의 주요한 한 부분으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명절이라고 빠질 일은 결코 아니다.
알코올의존은 매우 교활한 병이다. 이는 단지 신체 한 부분의 병이 아니라 감정적 심리적 사회적 영적인, 인간 차원의 질병이다. 그래서 단주를 잘하자면 알코올보다 더 영리해야한다. 이 병은 틈만 나면 미끄러뜨려 음주 실수를 하게 하여 재발의 구렁텅이로 빠뜨리려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단주하는 맑은 사람과 연락하고, 맑은 장소를 찾아가고, 맑은 활동을 하여야 한다. 명절을 재발의 핑계로 만들 필요는 없다. 명절이라고 마음이 풀릴지 모르지만, 알코올의존은 그렇지 않다. 늘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강원알코올상담센터 신정호 소장(원주연세대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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