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열풍 현장을 가다…산본평촌지역 인문학 동아리
“책과 함께 하는 시간, 삶이 풍부해져요”
책, 이야기, 그리고 사람…인문학의 세계에 빠지다
인문학 열풍이 지역 속으로 들어왔다. 각 도서관과 문화센터에도 인문학 강좌가 늘고 있다.
인문학의 위기에서 시작된 CEO·법조인·공직자 중심의 인문학 열풍이 이제는 지역의 도서관과 문화센터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평촌산본지역 도서관을 중심으로 인문학 동아리 모임현장을 생생 취재했다.
산본 중앙도서관 ‘나무 인문학’…“함께 읽으니 어려운 책도 잘 읽혀요”
제법 쌀쌀해진 가을 저녁 7시 30분. 산본 중앙도서관 2층 문화교실에 두터운 책을 든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모여든다. 인문학 동아리 ‘나무 인문학’ 회원들이다. 오늘은 조셉 캠벨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의 마지막 시간. 발제자로 나선 김현주(산본동) 씨는 발제문을 프린트 해 회원들에게 나누어 준다. ‘신화’에 대한 이야기가 주제로, 프로이드와 칼 융, 생활 속 우리 사회의 집단 무의식에 대한 이야기까지 열정적인 토론이 이어진다. 이야기만 들어도 그 수준이 보통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나무 인문학은 인문학 강좌와 지역주민의 참여를 높이기 위해 도서관에서 동아리 회원을 모집하여 올 1월부터 시작됐다. 매월 1,3주 목요일 저녁 7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2시간에 걸쳐 진행된다. 현재 회원은 28명으로 평소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 인문학에 관심 있는 직장인, 주부, 시인, 교수·교사, 강사 등으로 구성되었다. 저녁에 모임을 하는 덕에 남자회원도 6명이나 된다.
나무인문학 동아리는 혼자서 보기 어려운 책을 심도 깊게 같이 공부하고 읽자는 취지로 회원들끼리?인문학?도서를?선정하여?읽고?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선정 도서를?읽기?전과 읽은 후 마감할 때는?전문가를 초빙하여 전체적인 강의를 듣는 시간을 갖는다.?초빙강사 선정과 지원은?도서관의 도움을 받고 있다. 1월부터 6월까지는 ‘논어집주’(성백효 저. 전통문화연구회)를, 7월부터 10월까지는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조셉 캠벨. 민음사)를 강독했다. 11월부터는 ‘비극의 탄생 반시대적 고찰’(프리드리히 니체/이진우역. 책세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나무인문학 모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모임 이후 갖는 간단한 호프 한 잔이다. 회장 오은희(47, 산본동)씨는 “조금은 무거웠던 주제에서 벗어나 삶의 이야기, 그리고 교실에서는 다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책에 관심이 있고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초빙강사를 초청한 강의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산본 중앙도서관에는 ‘나무 인문학’ 동아리 외에도 매주 책을 읽는 주부들 중심의 ‘산책 독서회’도 있다.
평촌도서관 ‘목향회’… "매주 한권씩, 마음의 양식을 쌓아요“
산본에 ‘나무 인문학’ 동아리가 있다면, 평촌 도서관에는 오래된 주부 독서토론회 ‘목향회’가 있다. 평촌신도시가 건설되어 평촌도서관이 생기면서 시작된 이 모임은 그 역사가 도서관과 같이 한다. 인문학 열풍이 불기 훨씬 전부터 책이 좋아서 혼자 읽기보다 같이 읽고 얘기 위해 시작된 모임이다. 목향회 회원은 모두 주부다.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 평촌 도서관 2층 시청각실에 어김없이 모인다. 이번 주 책은 밀란 쿤테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매주 책 한권을 읽어내기가 쉽지는 않을 터인데 다들 열심히 읽어 온 듯하다. 10월은 ‘원작이 있는 영화’라는 테마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원작으로 한 영화 ‘프라하의 봄’을 지난주에 미리 보고 모였다고 하니 그 열정이 놀랍다. 모두들 노트며 메모지를 꺼내 놓고 진행자가 먼저 작가소개와 작품의 배경 설명 등을 하고 토론이 시작됐다. 돌아가면서 한 사람씩 작품에 대한 감상과 같이 얘기해 보고 싶은 점 등을 이야기 한다. 회장 배은경(40, 평촌동)씨는 “혼자 읽을 때는 생각지 못했던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고 ‘아하’ 하고 깨달을 때도 있고, 토론을 통해 다시 정리되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고 말했다.
목향회는 여름방학, 겨울방학 이외에 상반기, 하반기 도서를 회원들의 추천을 거처 미리 선정한다. 대부분 책을 추천한 사람이 진행자가 되어 모임을 진행하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토론에 참여한다. 1년이면 30여권의 책을 읽게 되는 셈이다. 모임을 마칠 때에는 간단하게 책에 대한 서평을 적고 인기를 가늠할 수 있도록 점수도 매긴다. 상반기 도서 중 가장 인기 있는 책은 ‘애드가 알렌 포의 단편선’ 이었다고 한다. 모임 초기에는 책 선정이나 토론 방식 등이 어색했지만 시간을 거치면서 책 선정, 토론 등 진행방식이 정착되었다고. 블로그도 운영되고 있어서 의무는 아니지만 책을 읽은 후 독후감 등을 올리기도 한다.
현재 꾸준히 모임에 나오는 회원은 7~8명 정도다. 2001년에 가입해서 10년이 넘은 제일 오래된 회원 기선계(46, 동탄)씨는 “동탄으로 이사를 가고 나서도 이 모임이 좋아 매주 모임에 빠지지 않고 나온다”며 “책 뿐 아니라 ‘사람’을 만나는 것이 또 하나의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올 7월에 가입한 신입회원 이숙열(42, 평촌동)씨는 “현실과 부딪히면서 에너지가 고갈되는 느낌도 들고, 학창시절에 읽지 못했던 책도 읽고 싶어 참여하게 됐다”며 “이 모임을 통해 에너지를 얻어간다”고 했다. 또 “책을 좀 더 꼼꼼히 읽게 됐다”며 “마음에 와 닿는 글귀는 메모도 하게 되고, 관련 자료도 찾게 된다”고 했다. 평촌도서관의 목향회 외에도 호계도서관, 비산도서관에도 독서모임이 운영되고 있다.
책 한권이 주는 여유와 풍요로움, 책으로 나누는 이야기 그리고 사람들. 가까운 도서관으로 발길을 돌려보자.
신현주 리포터 nashur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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