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치료를 받고 단주를 시도한 사람들 중에도 많은 숫자가 재발을 경험한다. 다시 음주하는 실수가 있더라도 가능한 본격적인 재발로 문제가 더 확대되지 않고, 또 재발이란 시행착오의 횟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회복을 위한 후속 치료가 꼭 필요하다.
얼마간 단주를 해오던 사람이 재발한 경우, 다시 음주하게 된 그 순간만을 문제로 보고 해결하려는 것은 퍽 근시안적이다. 다시 술잔을 기울인 그 상황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평소와는 무언가 달라진 그 사람의 행동거지가 필연적으로 재발로 연결됨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재발은 순간의 결과가 아니라 퍽 오래 전에 시작하여 점점 증폭되는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발효의 과정 중에 생긴 가스가 새어나갈 틈이 전혀 없이 꽉 막혀, 그 압력이 지나치면 언젠가 폭발하듯이.
회복을 위한 단주 집단치료모임에 꾸준히 참석하면, 재발로 이어지는 행동거지들을 이내 동료들이 먼저 알아차리고, 거기에 적합하게 반응하고 조언하기 마련이다. 아직 모임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하고 잘 참석하지 않으면 그러한 기회를 가질 수 없다. 단주를 효과적으로 도와주려면, 보호자 또한 재발에 이르게 될 때까지의 그 과정에 대하여 더 잘 알아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한 조짐 중에 먼저 눈에 뜨이는 것은 생활의 어떤 틀들이 와해되는 것이다. 단주를 시작하면서 확립한 규칙적인 일과와 스케줄이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잠자리에 일찍 들지 않고 늦잠을 잔다거나, 끼니를 거르고, 차림새나 개인위생이 소홀하다. 모임에도 빠지기 시작하고 남들에게 과잉 반응한다. 삶에서 더 본질적인 중요한 많은 것들을 외면하고, 삶의 아주 조그마한 것에 너무 집착한다.
부정이란 예전의 습관이 다시 살아난다. 자신의 음주 문제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살다보면 겪기 마련인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인정하지 않는다. 누가 보기에도 힘들어 보이는데 극구 ‘아무렇지도 않다’며 부인한다. 속으로 걱정하고 두려워하면서도 이런 마음을 동료들 앞에 털어놓고 함께 나누기를 거부한다.
외로움, 지루함, 짜증, 무기력감, 원망, 좌절감, 긴장, 분노 등으로 무척 힘들어하면서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약도 먹지 않으려 한다. 치료자의 제안이나 동료들의 조언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무작정 참는다지만, 쉽게 화를 내고 짜증을 잘 낸다. 부정적 감정들을 잘 관리하지 못하고 압도당하면, 생각이 명료하지 못하고 매사가 혼돈스럽다. 선택과 결정이 원만하지 못하므로, 결국 건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이 길어지면 결국 다시 술을 찾거나 도박 등 다른 중독적 행동에 다시 빠져드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렇지 않고는 미쳐버리거나 자살 밖에는 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 술을 입에 대기 훨씬 전에 이미 재발로 향해가고 있는 그 과정을 이해하고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강원알코올상담센터 신정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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