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산책> ‘나는 왕이로소이다’

조선판 ‘왕자와 거지’로 권력자의 롤 모델 제시

지역내일 2012-08-20

마크 트웨인은 ‘왕자와 거지’에서 헨리 8세의 아들 에드워드와 거지 톰을 뒤바꿔 권력자의 횡포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영화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바로 이 작품을 모티브로 한다. 충녕대군(훗날 세종)과 노비 덕칠이 뒤바뀐 조선판 ‘왕자와 거지’가 정치 권력자가 실천해야할 정의가 무엇인지 제시한다.



소심했던 충녕대군이 성군이 되기까지의 가상 시나리오
탁월한 리더십으로 민본정치를 펼친 세종대왕은 누가 뭐래도 온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역사 속 대표 군주다. 그런데 이 세종대왕도 즉위 전인 대군 시절의 모습은 책만 읽고 바깥 활동을 꺼리는 소심하고 나약한 인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소심했던 충녕대군이 어떻게 성군이 될 수 있었을까. 영화는 바로 이러한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절대 군주 태종의 셋째 아들인 충녕(주지훈)은 권력에는 관심도 없고 지나친 편식에다 하루 종일 책만 읽을 뿐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심약한 모범생이다. 주색잡기만 일삼던 세자 양녕이 폐위되면서 갑자기 세자에 책봉된 충녕은 왕이 되기는 죽기보다 싫다. 결국 충녕은 월담을 하게 되고, 때마침 궁으로 끌려간 주인아씨 수연(이하늬)을 구하기 위해 술 취해 궁을 찾아간 노비 덕칠(주지훈)이 충녕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유약한 충녕에게 궁 밖의 세상은 고난의 연속이다. 하루아침에 노비가 된 철부지 왕자 충녕은 멍석말이를 당하고 힘겨운 노역과 구걸 등 백성들의 고달픈 현실을 몸소 체험하며 성군의 자질을 배워간다.

연기파 코미디 배우들 총 출동해 유쾌한 웃음 선사
드라마 ‘궁’ 이후 7년 만에 왕세자를 연기한 주지훈은 충녕과 덕칠의 1인 2역을 자연스럽게 소화했다. 소심하고 유약한 모습에서 당당하고 현명한 모습으로 변해가는 세자와 무식하지만 의리 넘치는 노비의 정반대인 두 캐릭터를 능청스럽게 보여주며 3년간의 공백을 무색케 했다.
웃음기 없는 주지훈의 연기는 연기파 코미디 배우들의 연기와 뒤섞이며 유쾌한 웃음을 선사한다. 개성 넘치는 카리스마 배우 백윤식과 푸근한 이미지의 변희봉은 이 영화에서 새로운 캐릭터로 변신한다. 백윤식은 온화하면서도 엉뚱한 이조판서 황희로, 변희봉은 비열하고 날카로운 간신배 영의정 신익 역을 맡아 색다른 모습을 선보인다. 
충녕의 호위무사인 해구와 황구 역을 맡은 임원희와 김수로는 콤비를 이루며 재치 넘치는 코미디 연기로 영화의 재미를 더해준다. 여기에 절대군주 태종 역을 맡은 배우 박영규는 표정과 몸짓만으로도 호탕함을 전해주고, 세자빈 역을 맡은 이미도의 엽기에 가까운 연기는 코미디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한다.

현실 정치에서 찾아보기 힘든 ‘역지사지’의 감동
‘왕자와 거지’가 왕자와 거지라는 두 인물을 통해 왕실 안팎의 세상 비판에 균형을 이루었다면,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노비가 된 왕자의 체험에 무게가 실린다. 마크 트웨인은 백성들의 어려움을 체험하는 왕자를 통해 권력자의 횡포를 비판함과 동시에 바람직한 군주의 길을 알려주었고, 왕자가 된 거지를 통해 당시 사회의 보수성과 허례허식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이에 비해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사회 비판보다는 상상력을 동원해 세종대왕이 성군이 될 수 있었던 근거를 제시한다. 머리에 지식만 가득할 뿐 연약하고 배려심 없는 왕자가 백성들과의 어울림 속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를 내면화해 진정한 왕으로 성장하게 되는 과정은 공식처럼 예견된 스토리다. 하지만 이 당연한 스토리가 감동을 주는 것은 우리가 현실 속에서는 도무지 접하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이선이 리포터
sunnyyee@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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