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으니 뇌도 늙어가나 보다. 빠릿빠릿한 10대에 이어 또랑또랑한 20대 두뇌에 안녕을 고하고 나니, 깜빡깜빡하는 ‘아줌마 치매’ 단계가 됐다. 나도 왕년엔 똑똑했다는 걸 위안으로 삼으며 세월을 탓할 즈음, 꿈같은 영화 <리미트리스>를 만났다.
약 한 알로 일약 천재 ‘덤’
인간은 살면서 뇌의 단 몇 퍼센트도 쓰지 못한다고 한다. 바로 그런 점에 착안해, 이 영화는 한 알만 먹으면 뇌의 기능이 백 퍼센트 가동되는 신약 NZT를 먹게 되면서 벌어지는 한 남자의 ‘반전 인생’ 이야기다.
마감을 코앞에 두고 있지만 단 한 글자도 써내려가지 못한 무능력한 작가 에디 모라(브래들리 쿠퍼). 애인 린디(애비 코니쉬)에게도 차이며 찌질한 인생을 살고 있는 남자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전처의 동생이 준 신약 한 알을 먹는 순간 지금까지와는 정반대의 모습이 된다. 어디선가 주워들었던 것은 모두 기억하고 하루 만에 외국어와 피아노를 습득하며 단 몇 시간 만에 책 한 권을 탈고해버린다. 돌아선 옛 애인의 마음도 다시 사로잡을 정도니 그야말로 신세계를 만난 셈.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에디는 더 큰 욕망을 불태우며 ‘인위적인 천재적 두뇌’를 볼모로 주식 투자에 손을 대고, 하루하루 약을 먹으며 자신의 능력을 지속해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인다.
그를 지켜보던 금융계 거물 칼 밴 룬(로버트 드니로)이 거대 기업 간의 합병을 에디에게 제의하지만 인생역전의 기회도 잠시, 신약을 탐내는 사람들이 그를 위협하고 극심한 약 부작용이 더해져 최대의 위기를 맞는다.
이 영화에 이소룡 나온다?
아일랜드 소설가 앨런 그린의 스릴러 <더 다크 필드>를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탄탄한 줄거리와 군더더기 없는 연출력이 돋보인다. 예일대 출신의 닐 버거 감독이 신약 한 알로 끊임없이 변신하는 주인공의 심리변화를 포착하기 위해, 카메라의 흔들림이나 주인공의 시점으로 영상을 담아내 극적 재미를 더했다.
특히 닐 버거 감독은 신약 복용 전 주인공의 모습을 극대화하기 위해 핸드헬드(사람이 카메라를 직접 들고 찍는 촬영 기법)로 거칠고 어지러우며 정돈되지 않은 주인공의 느낌을 부각시켰다. 반면 신약 복용 후 주인공이 순식간에 주위의 정보를 순식간에 흡수하 장면에서는 360도 회전하는 파노라마 영상을 담아냈다. 또한 주인공이 사는 집 주변의 거리를 어두운 색감으로 표현해, 전체적으로 원색적인 느낌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게 한 것도 섬세한 연출력이 빚어낸 결과다.
액션 장면도 이 영화의 ‘뜻하지 않은’ 수확이다. 싸움은커녕 한없이 심약했던 남자가 신약을 먹고 과거 비디오에서 봤던 이소룡 영화 속 액션을 기억하고는 길거리 깡패들과 대적하는 장면을 눈여겨보시라. 실제로 이 장면에서 이소룡 액션과 주인공 액션을 교차 편집해, 영화적 잔재미를 잘 살려냈다. 약 한 알 먹었다고 갑자기 파이터가 되는 상황이 황당하다 여길 수도 있겠지만, 이런 약이 있다는 상상 자체가 완벽한 허구이니 그저 주인공 인냥 받아들이며 에디의 인생역전을 함께 즐겨보자.
호불호가 갈리는 엔딩의 묘미
‘기대하지 않고 봤다가 수작을 만났다’는 누리꾼들의 말처럼, 영화 마니아인 리포터 역시 <리미트리스>를 추천한다. 장르가 주는 이야기의 힘과 섬세한 연출력이 이름값만 부각된 몇몇 액션 블록버스터보다 훨씬 더 잘 만들었다는 게 리포터의 생각이니.
이 영화의 엔딩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약을 업그레이드 시킨 주인공의 두뇌 플레이는 막판에 허를 찌를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된다. (더 말하면 영화의 스포일러가 대량 유출되므로 여기서 중략) 무능력한 소설가에서 주식을 뒤흔든 거물로, 주식 거물에서 다시 한 번 세상을 뒤흔들 또 하나의 거물로 재도전하는 주인공의 마지막 모습은 평범한 관객들에게 대리만족을 선사한다.
생각해보라. 신약으로 인생 역전을 맞은 주인공이 만일 영화의 엔딩에서 또 다시 약 먹기 전의 나락으로 떨어진다면? ‘무분별한 약 복용은 금물’이라는 캠페인 영화도 아니니 어쩌면 마지막까지 약을 ‘효율적’으로 응용하는 주인공의 모습에 수많은 관객들이 쾌재를 부를지도 모른다. 꿈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저 약 한 번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만드는 영화. 그게 바로 이 영화가 주는 짜릿한 묘미다.
피옥희 리포터 piokhee@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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