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색다른 소재, 보다 신선한 파격을 찾는 요즘엔 게이나 동성애라는 소재가 다소 밋밋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30년 전 뮤지컬 <라카지>가 무대에 처음 올랐을 때는 미국 사회도 발칵 뒤집혔다고 한다. 그리고 그 무대가 한국으로 옮겨지기까지 30년이라는 시간이 더 걸렸다.
원제는 ‘새장 속의 광대들’이라는 뜻의 ‘라 카지 오 폴(La Cage Aux Folles)’이다. 공연을 보다보면 왜 제목이 ‘라 카지 오 폴’인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화려하고 멋진 공연을 보여주는 여장남자들. 그들의 멋진 무대는 클럽 무대 위에서일 뿐 새장(무대) 밖 시선은 여전히 그들을 움츠러들게 하는 편견의 세상이다. 극의 말미, 결국 큰 새장 세트가 무대 위에 드리워지며 극이 마무리된다. 등장인물들의 화해와 감동은 아직도 새장 밖 세상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남자 엄마의 위대한 희생
<라카지>는 묻는다. 가족을 구성하고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가 무엇이냐고. 생물학적 유전관계? 사회적으로 명망 높은 직업과 경제적 능력? 사랑?
극중 아빠인 조지는 클럽사장이다. 보수적인 정치가인 에두아르 딩동을 장인어른으로 맞이하게 된 아들 미셀은 그런 아버지의 직업이 부끄럽다. 생물학적으로 남성인 엄마 앨빈은 더더욱 그렇다. 결국 20년간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며 헌신적으로 아들을 길러온 이 남자 엄마는 상견례 장소에 얼굴조차 드러내면 안 되는 치부가 된다.
아들은 엄마에게 미안하지만 사랑하는 여인을 얻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며 엄마의 협조를 구한다. 어떤 사랑은 지켜야 하는 소중한 사랑이고 누구의 사랑은 숨겨야 하는 부끄러운 사랑인걸까? 밀려올라오는 회환과 슬픔은 그 무엇으로도 위로받지 못한다. 전설적인 클럽의 디바 앨빈. 그는 남편과 아들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는 슬픔에 무너지지만 가족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아들을 위해 아예 여자인 척 연기를 하게 되는 앨빈. 자신을 버리는 그녀의 결정에 지켜보는 관객 모두 가슴이 아려온다.
화려하고 고혹적인 남자들의 쇼
슬픈 줄거리에 비해 <라카지>의 무대는 조금도 처지거나 어둡고 우울한 기색이 없다. 무대가 클럽인 덕분에 무대 위는 언제나 화려한 볼거리로 가득하다. 매 씬마다 다른 콘셉트와 세련된 의상, 그리고 무대 미학이 더해진 라카지 걸들의 군무는 기존의 쇼 뮤지컬에서는 보지 못했던 독특하고 색다른 비주얼을 제공하며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또한 작품의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La Cage Aux Folles’ 씬은 이 공연에서 놓쳐서는 안 될 최고의 명장면이다. 새장이라는 신비로운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흑조들의 유연하고도 아크로바틱한 안무는 압권이다.
주인공 앨빈 역에는 정성화와 김다현이 더블 캐스팅 되었다. 리포터가 극장을 찾은 날은 김다현의 앨빈을 만나는 날이었다. 세상에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는가. 신이 그를 시기해 남자로 만들었을까 싶을 정도로 김다현은 고혹적인 아름다움의 ‘앨빈’ 그 자체였다. 뮤지컬 ‘헤드윅’과 연극 ‘엠. 버터플라이’에서 여장을 했던 김다현. 이번엔 실루엣이 돋보이는 롱드레스와 화려한 메이크업, 우아한 헤어스타일로 전작들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매력적인 아름다움을 갖추었다. 더블 캐스팅된 배우가 정성화라고 하니 그의 앨빈은 또 어떤 느낌일지 사뭇 기대가 된다.
경쾌하고 빛나는 조연, 집사 자코브
무거운 소재인 뮤지컬 <라카지>가 경쾌하고 즐겁게 흘러가는 절대적인 이유는 집사 자코브 덕분이다. 리포터가 찾아간 날 무대에 오른 자코브는 배우 김호영이 맡았다. 몇 안 되는 여자 배우 중 한 명일 거라고 생각했던 그가 아름다운 남자임을 알았을 때 놀라고 적절하게 터트려주는 그의 웃음 코드에 점차 매료되게 된다. 알고 보니 김호영은 `렌트`의 엔젤, `자나 돈트`의 자나, `이`의 공길 등을 맡아 여장남자 전문 배우로 불린단다. 관객을 쥐락펴락 울렸다 웃겼다 하는 집사 자코브. 꼭 필요한 말은 하고야 말아 관객의 마음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그는 커튼 콜 때 관객의 열광적인 박수를 받았다.
초연 이후 공연될 때마다 토니 어워즈 작품상(1984, 2005, 2010)을 수상한 화려한 쇼 뮤지컬 <라카지>. 그 화려한 무대와 감동적인 여장남자들의 이야기는 9월 4일까지 역삼동 LG 아트센터에서 만날 수 있다.
이지혜 리포터 angus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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