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인 지난 8일 아침 8시 30분. 중산초등학교 4학년 교실 문이 열렸다. 학부모 명예사서 김동현 씨가 책을 들고 들어왔다. 이날 읽어줄 책은 전우치전에 나오는 이야기로 만든 그림책이다. 가난하고 병든 부모를 모시고 사는 주인공이 날마다 돈을 주는 신기한 족자를 알게 된다는 이야기다. 4학년들이 그림책을 시시해하지 않을까 걱정한 것은 오해였다. 아이들은 실감나게 읽어주는 김동현 씨의 목소리와, 내용에 걸맞은 그림을 보며 쏙 빠져들어 보고 있었다.
김동현 씨는 “엄마와 아이에게 모두 도움이 된다”는 이웃의 추천으로 명예사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처음 학교에 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학교에 가고 선생님을 만나는 일이 부담이 됐어요. 아이에 대한 말을 너무 자주 듣게 되지는 않을까 두려웠어요. 아이 때문에 학교에 가서 눈도장 찍는 부모로 비칠까 걱정도 했고요.”
일 년 뒤, 김 씨는 괜한 걱정을 했다며 웃었다.
“담임선생님은 거의 못 봤고 사서 선생님만 자주 만났어요.(웃음) 너무 나서는 학부모 아닌가 하는 시선도 거의 없고요. 책 읽어줄 때 아이들이 몰입하는 모습을 보면 좋아서 일주일에 한 번 출근하는 게 일이지만 계속 나오게 돼요.”
책을 통해 아이들과 공감대 형성
중산초등학교에는 일주일에 하루, 책을 읽어주는 학부모 명예사서가 20여 명 된다. 명예사서 모임은 홍보부, 동화부 등으로 나뉘는데 책 읽어주는 수업은 동화부에서 담당하고 있다. 교실에 찾아가 책을 읽어주는 활동은 2011년에 저학년을 대상으로 시작해서, 올해 5학년까지 확대됐다.
심지은 씨는 3년 전만 해도 학교와 관련된 일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 학부모 모임은 물론이고 집 밖으로 나가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엄마를 학교로 이끈 건 아이였다. ‘학교에 와서 책 읽어주는 어머니를 해달라’는 아이를 위해 명예사서 활동에 참여했다.
“내성적이라 앞에 서면 떨려서 말도 안 나오고 눈앞이 캄캄해지는 성격이에요. 지금은 많이 대범해졌어요.”
권영주 씨는 전학의 어려움을 명예사서 활동으로 보다 편하게 넘겼다.
“나는 잘 모르는 아이가 동네에서 만나 알아보고 인사를 해요. 다른 집 아이하고도 만나 인사하고 주고받는 따뜻함을 나눌 수 있어서 마음이 풍성해져요.”
명예사서 학부모들은 이 활동을 통해 “학교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책을 통해 아이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게 돼 좋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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