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이룬 수능 전날, 그리고 가슴 두근거림
필자는 현재 공황장애, 불면증, 가슴 두근거림 등을 주로 치료하고 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예전에 이런 증상을 두루 경험한 바 있다.
15년 전 수능 시험 전날, 필자는 불안감과 초조로 뜬 눈으로 밤을 샜다. 수년간 밤잠을 줄여가며 각고의 노력 끝에 이룬 학업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위기에 처하면서 시험 당일에도 불안감과 가슴 두근거림은 잦아들지 않았고, 생에 가장 괴로운 시험을 봐야 했다. 다행히 한의대에 합격했지만, 당시의 충격과 공포는 이후에 공황장애로 발전하는 씨앗이 됐다. 치유는 괴로운 상황에 정면으로 부딪치고 이겨내는 긴 과정을 거쳐 이뤄졌다. 심리적인 치유와 정신적인 성숙은 나쁜 기억을 잊는데 도움이 되며, 심장을 다시 씻어내고 강하게 하는 한의학적 치료도 큰 도움이 된다. 오늘은 후자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공황장애를 비롯한 심신 질환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은 가슴의 두근거림이다. 특별한 질환이 없는 경우에도 누구나 놀래거나 긴장하면 가슴이 두근거릴 수 있다. 하지만 병적으로 두근거림이 잦거나 통제가 힘들어서 괴로움을 느낄 경우 병으로 봐야 한다. 한의학에서는 이를 경계 혹은 정충이라고 한다. 가슴이 세차게 뛰고 잘 놀래며 마음이 불안한 것을 환자 자신도 느끼지만 자제할 수 없는 경우다. 대부분 심장이 빨리 뛰거나 불규칙하게 뛰는 경우가 많다. 경계는 스트레스나 충격, 과로로 인하여 간헐적으로 발작하는 경우를 말하고, 정충은 두근거림과 불안감이 하루 종일 이어지고 피로와 스트레스가 겹칠 때는 더욱 심한 경우를 말한다. 즉, 정충이 더욱 심한 질환인 것이며 대부분 불안 증세를 겸한다. 양방 신경정신과에서 말하는 불안, 우울, 공황장애 등 다양한 질환이 이 범주에 속한다.
한의학은 늘 허와 실을 따진다. 허는 부족함, 실은 넘침 혹은 외부 요인과 노폐물 등을 말한다. 정충에서 허는 심장의 혈이 부족한 것을 말하고, 실은 담을 말한다. 흔히 우리가 어깨에 담이 결렸다고 말할 때 쓰는 그 담이다. 담은 근육에도 발생하지만 오장육부에도 발생할 수 있으며, 순환을 막고 답답함과 불규칙을 만들어내는 불청객이다. 표현과 원인에 따라 담 이외에도 어혈 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정충을 치료할 때는 반드시 담을 먼저 제거하고, 이후에 반드시 심장의 혈을 보충한다. 혈을 보충한다는 개념은 심장을 안정시키고 재발을 막아주는 일종의 영양 보충 개념으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앞서 심장을 씻어내고 강하게 하는 것이 치료의 핵심이라고 언급한 것도 이런 과정을 가리키는 것이다.
강남경희한의원
김황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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