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 보기에는 그들은 보통의 말짱한 애들 같아 보이는 수가 많다. 누구에게나 싹싹하고 늘 미소를 잃지 않아 오히려 더 예의바르고 모범생이라고 칭찬받는 수도 많다.
그렇지만 그 아이들에게는 남들에게 결코 드러내놓지 못하는 비밀이 있다. 부모의 과음 문제와 이로 인한 가정 내 불화와 잦은 불행들이다. 더 책임감을 느끼기 마련인 장남이나 장녀들이 더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창피한 진실을 감추고 늘 혼자서 궁리하고 자기 혼자 힘만으로 해결하려 한다. 아버지가 기분 나쁘지 않게 하여 음주를 덜 하게 하고, 늘 비탄에 젖어 사는 무기력한 어머니를 위로하려고 애쓴다. 부모 말씀을 잘 듣고 동생들 잘 챙기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집안일도 잘 거드는 조숙해 보이는 행동거지가 그 때문이다.
격한 감정이 걸린 경험은 단 한번일지라도 평생의 습관으로 굳기 쉬운데, 성장기에 그런 일들을 일상적으로 겪으며 살다보니, 이러한 해결사적인 삶의 방식을 일생동안 지속하게 된다. 그래서 남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에는 익숙하나, 정작 자신의 문제해결에는 너무나 미숙하다. 일 처리는 잘하는데 사람을 겪어내는 데에는 어설프다. 자기주장과 거절 능력이 발달하지 못하고, 타인들과의 사회관계 기술이 젬병이다. 나이가 들면 우울증이나 불안증으로 발전하는 수도 많다. 과음 문제가 없는 집안의 자녀들보다 알코올 남용과 의존의 문제로 진행하기 쉬운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정작 문제가 많은 부모들은 그래도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느라 애썼다고 생각한다. 자녀 양육에서 감정적 요소는 전혀 보지 못하고 단지 물질적 해결이 모두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얼마나 혼란스럽고 당황하고 두려움에 떨며 살았는지를 모른다. 비밀을 밝히면 부모를 배반한 것 같아, 모든 것을 감추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느라 얼마나 외롭고 힘들고 고립되어 살았는지를 모른다.
자라는 아이들에게는 믿을 수 있는 어른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불확실하고 의문스러운 것이 많은 시기에 무슨 말이든 솔직하게 터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혼란스럽지 않고 외롭지 않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결코 배반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당황스럽고 혼돈스러운 감정을 해결할 수 있다. 과음과 집안 문제가 모두 자신이 잘못한 탓이 아니라는 것을 알도록 도와야 한다.
터놓고 이야기하려면 비슷한 또래들이 함께 모여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집단치료 모임이 퍽 유용하다. 단주를 하려는 어른들이 자신은 이런 치료를 받아들이면서도, 자기 때문에 상처를 입은 자녀들에게는 아무런 회복의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강원알코올상담센터 신정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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