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사람들

도예가 이경주·큐레이터 박서운숙 씨 부부

당신의 집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나요?

지역내일 2012-05-28

어느 날 아이가 물었다. “엄마 내 고향집은 어디야?” 어디라고 답해야 하나. 아이가 태어난 병원? 아니면 태어날 당시 살았던 동네? 계약 기간이 끝나면 짐을 싸서 새로운 곳으로 떠나야 하는 현대의 유목민인 부모에게는 난처한 질문이다.
도예가 이경주 씨의 작품 소재는 ‘집’이다. 한국의 독특한 주거 문화로 아파트를 꼽을 만큼 공동주택에 사는 인구가 늘어난 지금, 집이라니. 낯설다.
이경주 작가는 집 모양의 도자기, 도자기판 위에 그린 집 등 하나의 주제로 꾸준히 작업하고 있다. 풍동에 있는 작업실 겸 갤러리 ‘더 그릇’에서 12살 난 딸을 키우며 살아가고 있는 도예가 이경주 씨와 그의 아내 큐레이터 박서운숙 씨를 함께 만났다.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세상으로 열린 나의 집
이경주 작가는 작품을 통해 집의 의미를 묻는다. 삼천 오백 개의 작은 도자기 집을 바닥에 설치한 <즐거운 나의 집 2012(Home Sweet Home)>에서도 마찬가지다. 가로세로 크기가 오 센티미터를 넘지 않는 작은 집들. 청색과 백색 먹색 깊은 붉은 빛의 절제된 색의 도자기 집에 잊지 않고 문을 하나씩 달아 두었다. 열린 문으로 사람과 이야기가 오간다. 조금씩 거리를 두고 늘어선 집들 사이에는 작은 공간이 생긴다. 집 사이에 생긴 틈은 골목이 된다. 너른 광장에서는 듣지 못하는 진솔한 이야기들이 거기서 펼쳐진다. 휘어져 들어가는 길에서 이웃을 만나 속닥거리는 이야기가 들릴 것만 같다.
“이 세상의 남과 여가 만나서 하나의 공간을 만들고 그 속에 삶의 이야기를 만드는 거죠. 사람마다 외형이 다르듯이 집집마다 사는 이야기가 다 달라요.”
어떤 집인지 누가 사는지 상상은 관객의 몫이다.


집은 또 하나의 세계
주제가 집인 만큼 작가는 가족, 가정, 행복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과연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큰 것, 물질적인 것이 나에게 줄 수 있는 걸까요.”
아마도 작가는 그 생각을 하며 지난한 창작의 과정을 보냈으리라.
“같이 있다는 거, 특별하게 바라는 것 없어도 같이 있음으로 해서 좋은 거잖아요. 한 끼 간단한 찬에 밥을 먹어도 참 좋다.”
그런 마음, 그것이 집이다. 적어도 작가의 마음속에서는 말이다.
“집은 사람이에요. 물질을 중요하게 여기면 (재산 가치를 지닌) 집이, 의미를 생각하면 사람이 올라오죠. 결국은 가치관에 따라 표현이 되는 것 같아요.”
웰컴 투 마이 월드(Welcome To My World)라고 이름 붙인 전시 제목처럼 이경주 작가는 관객을 자신의 세계로 초대한다. 집은 하나의 세계다. 다른 사람의 집에 가는 일은 하나의 세계에 방문하는 일이다. 들어가면서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고, 관계를 맺고 더불어 살아간다. 그래서 이경주 작가의 집은 하우스(House)가 아닌 홈(Home)의 개념에 가깝다.


집에 담고픈 변하지 않는 희망 하나
이경주 작가가 도판위에 화려한 색깔로 그린 <그 여자의 집>, <그 남자의 집> 시리즈에는 금줄이 쳐져 있다. 작가는 물질적인 것보다는 영원성, 변하지 않는 희망과 가치에 대한 상징이라고 말했다. 작품들은 제 색깔을 마음껏 뿜어내면서도 조화를 잃지 않는다. 얼핏 만다라가 떠올랐다.
반짝이는 금색 선은 출산 후 숯과 고추를 매달던 줄 같기도 하다. 생명이 머무는 신성한 영역에 금줄을 치듯, 각자의 영혼이 머무는 마음의 집에도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져 있는 것은 아닐까. 너무나 쉽게 서로의 선을 밟고 다치게 만드는 요즘의 세태에 대해, 작가는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부부사이에도 지켜보기가 필요해요. 그러면 알아서 잘 가는 것 같아요. 바로 해결하려는 제스처보다는 스스로 어느 선까지 정리한다는 걸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한 거죠. 약간의 시간적 거리감, 마지막은 결국 대화예요.”
집을 주제로 작업하는 작가의 실제 집은 어떨까. 이태리 건축가가 디자인한 ‘더 그릇’은 하나의 작품처럼 마을 안에 서 있다. 일층은 작업실이자 갤러리, 이층은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집이다. 마당에 들어서면 딸을 위해 심은 매화나무와 집 모양의 철제 조형물이 보인다. 미꾸라지가 헤엄치는 수조와 허브, 잔디밭, 애완견 보리가 살고 있는 마당을 지나 나무 계단을 올라가면 갤러리 겸 작업실이 보인다. 문을 활짝 열어 놓으면 바람과 햇볕이 바로 들어오는 열린 공간이다. 2층에는 작은 테라스가 있다. 화원처럼 정성들여 마당을 가꾸는 이웃과 소곤소곤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곳이다.


큐레이터 아내와 함께 꾸려가는 더 그릇
작가의 작품을 세상에 알리는 일은 큐레이터인 아내 박서운숙 씨가 주로 맡는다. 미술이론을 공부하고 호암갤러리에서 일하던 그는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자 미술관 일을 접었다. 대신 남편의 매니저를 자임했다. 전시회를 준비하고 인터넷쇼핑몰을 관리하는 일도 그의 몫이다.
블로그 더 그릇(blog.naver.com/ppsus)에는 이경주 작가가 구운 생활 자기들과 집을 배경으로 날마다 먹는 요리와 일상이 또 하나의 작품처럼 펼쳐진다. 아이에게 주려고 구운 과자, 이웃이 나누어 준 봄나물, 때로는 화사하게 피어난 봄꽃이 소재가 되기도 한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니 이해의 폭이 넓기도 하지만 가까이 있어 갈등을 피해가기도 어렵다. 박서운숙 씨는 “예술을 하는 사람이니 좀 특이한 부분은 그러려니 넘어가고, 남편도 나의 예민한 부분을 감수성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둘이 같이 있을 때만 행복한 게 아니고 온전한 하나하나가 모여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두 사람 사이에, 바람이 지나갈 공간이 넉넉해 보인다. 부부와 가족의 의미를 묻자, 작가는 인터뷰 하는 날 아침에 산 나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무에 비용을 지불하고 사오는데 그건 지나온 시간에 대한 가치 지불이죠. 십년 오년 기르신 분이 나이테를 만들면서 축적된 시간을 단 순간에 사오는 거잖아요. 부부나 가족관계도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라고 희로애락을 함께 겪어야죠. 단 순간에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영혼의 안식처를 잃고 길 위에서 헤매는 현대의 군상들에게 도예가 이경주의 작품과 삶은 무심하게 골목길 하나를 내어준다. 여기 당신의 집을 짓고 당신만의 이야기를 들려주라고.
문의 070-8813-6158
더그릇 쇼핑몰 www.cconma.com (아트샵 내 더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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