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지. 무대 위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일도, ‘내가 제일 잘 나가’라며 큰 소리 치는 일도 전혀 부끄럽지 않은 나이 말이다. 아쉽게도 요즘은 그런 ‘철모르는’ 나이가 점점 아래로 내려오고 있는 듯하다. 초등학생들마저 입시 준비를 시작한 지 오래 되었고, ‘철없이’ 놀고 싶어도 놀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여기 무대를 놀이터 삼는 아이들이 있어 만나 보았다. 일산 지역의 어린이 뮤지컬 극단에 다니는 아이들이다. 연기자나 가수,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아이들도, 또래관계, 즐거운 놀이를 위해 다니는 아이들도 있다. 꿈은 달랐지만 이 아이들, 참 재밌게 신나게 놀면서 자라고 있었다.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뮤지컬은 나를 사랑하게 도와주는 예술교육
백석동 문화예술학교 키다리
“아이들만이 가지고 있는 순수함에 아름다움을 더해서 공연을 만들고 싶어요. 예술적인 역량에 좋은 그림을 더해서 예술적인 무대를 만드는 거죠.”
백석동 문화예술학교 키다리 하미숙 대표의 목소리에서 흥이 느껴졌다. 요즘 그는 2년 이상 뮤지컬을 배운 초중학생들을 데리고 지방 공연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문화예술학교 키다리가 소외 계층을 위한 공연을 나서기까지 하 대표의 생각이나 교육방향에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일산에서 터를 잡고 어린이 뮤지컬을 가르친 것이 2007년이니 벌써 5년째를 맞는다. 연기자로서 닦은 노하우로 아역 배우를 다수 배출했다. 그러나 부모들의 욕심이 개입되며 상처받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밟혔다. 아이들을 방송의 세계에 넣는 일은 기쁨도 컸지만 아픔도 오래 남았다. 순수한 공연예술로 방향을 바꾸게 된 이유다.
키다리의 수업은 아이들에게서 나온다. ‘우는 연기를 하세요’가 아니다. 상황을 직접 던져준다.
“울고 있는 아이가 있네. 여기는 어디고 이 아이는 몇 살일까? 왜 여기에 와 있을까? 물으면 아이들마다 달라요. 스토리를 이야기하게 되는 거예요. 왜 우는지 이유가 나오면 그에 맞는 이야기가 만들어 져요.”
키다리예술단의 연기 수업은 안에 있는 것을 꺼내는 과정이다.
“내 속에 있는 걸 참기보다는 내 목소리로 노래하고, 대사를 통해 나를 후련하게 토해내는 거죠. 그러면서 나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 뮤지컬이에요.”
예술로 노는 키다리의 아이들은 뮤지컬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목요일 저녁에 수업하는 초등 고학년과 중등반 아이들은 “노래, 춤 실력이 늘어서 좋다”는 것을 공통적으로 꼽았다.
정다영(해솔중2) 양은 “학교 생활할 때도 발음이나 발상, 창작을 할때 뮤지컬 수업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발성과 호흡을 배우면서 스스로 ‘고음불가’로 여겼던 노래 실력도 부쩍 늘었다. 얼마 전에는 뮤지컬 삽입곡인 ‘메모리’를 부르다가 감정이 북받쳐 울기도 했다.
“선생님이 화 낼까봐 제대로 말도 못하고 친구들하고 사귀지 못하는 소심한 친구들 보면 답답해요. 여기 오면 성격이 활발해 져요. 적극적으로 변하고 자신감도 풍부해져요.”
최민서(오마초6) 양의 말처럼 키다리예술단의 어린 단원들의 목소리와 태도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어린이만이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예술무대를 만들겠다는 뚝심 있는 선생님과 발랄한 제자들의 무대가 기대된다.
위치 일산동구 백석동 1278-1
문의 031-916-5715
뮤지컬 덕분에 학교생활 어려움 극복했죠
어린이청소년뮤지컬극단 <날으는 자동차> 단원 김예린 양
“처음 시작할 때는 그다지 재미가 없었는데, 한 번 공연을 해보고 나니까 욕심이 생겼어요.”
3년 전 김예린(현산초6) 양은 어린이뮤지컬극단 <날으는 자동차>의 공연을 보러 갔다. 어머니 서양순 씨는 무대에 선 아이들의 밝은 모습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예린이가 학교에 적응을 못하고 힘들어 하던 때였어요. 일 년 동안 어려워하던 아이를 보며 해줄 수 있는 게 없을까 생각하다 공연을 보게 된 거죠. 이거라면 아이가 품어내지 못하고 쌓아놨던걸 풀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3년 동안 아이는 변화의 과정을 겪었다. 첫 무대에서 한 줄짜리 대사를 말하던 예린 양은 얼마 전 극단 공연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을 만큼 달라졌다.
어머니 서양순 씨는 3년 동안 극단 생활을 하면서 배려와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고학년들이 저학년 아이들을 많이 도와주거든요. 화장실 갈 때나 도움이 필요할 때 돌아가면서 큰언니 역할을 해요.”
<날으는 자동차>에서는 그룹수업을 진행하는데, 여러 학년이 섞여 있는 그룹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며 자연스레 자신감이 길러진다.
자신을 내보이는데 시간이 좀 더 필요했던 예린 양은 5학년 말부터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6학년에 올라가서는 부회장이 되었고 친구 관계도 달라졌다.
“처음 오디션 볼 때는 너무 쑥스러워서 앞에 나가서 잘 보지도 못하고 쭈뼛쭈뼛했는데 이번은 익숙해져서 자신 있게 잘 봤어요.”
학교생활도 달라졌다. 친구들이랑 훨씬 더 빨리 친해질 수 있게 됐다. 상대방에게 먼저 인사나 말을 건네면 쉽게 친해질 수 있다는 교훈도 몸소 터득했다.
어머니도 달라졌다. 공부하라는 말보다 아이의 행복을 우선에 두게 되었다. “뮤지컬의 효과를 보려면 짧은 시간 맛보기보다는 2~3년은 길게 내다보고 보내라”는 당부도 덧붙였다.
위치 일산동구 마두동 989-7번지
문의 02-764-8092
우리는 동네에서 뮤지컬 하며 놀아요
행신동 어린이뮤지컬단 <아이>
학원, 식당, 상가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행신동의 한 상가건물 7층. 깔깔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진다. 어린이뮤지컬단 <아이>는 ‘아이들의 행복’을 가장 큰 목표로 둔다.
수업 내용은 크게 무용, 노래, 연극으로 나뉜다. 무용수업 시간에는 뮤지컬 안무와 재즈댄스를 배운다. 신체 조절능력과 유연성을 기를 수 있다. 노래 수업 시간에는 소리 발성과 호흡, 유명 뮤지컬 작품을 배운다. 대본을 읽고 대사 훈련, 즉흥극 수업이 있는 연극 수업도 진행한다. 모든 수업에는 ‘놀이’가 접목된다. 노래도 연극도 춤도 놀이다.
리포터가 찾아간 목요일 오후에도 아이들은 둥그렇게 서서 각자의 손을 잡고 원모양 풀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수업이 놀이로 진행되는 것은 극단을 이끄는 최지숙 씨가 수년간 어린이 뮤지컬을 지도하며 정리한 생각 때문이다.
“사회성, 창의력, 상상력, 표현력 이런 것들은 뮤지컬을 하다 보면 당연히 얻어가죠. 여기서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심이에요.”
신나고, 재미있고,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공연 일정을 잡아놓고 아이들을 준비시키기 보다는, 즐겁게 놀다가 “무대에도 올리고 싶다”하는 마음이 아이들 속에서 나올 때 공연을 준비한다.
무대도 색다르다. 찾아가는 공연이나 동네 행사 출연을 하며 경비를 최소화 한다. 고양희망네트워크에서 초대해 고양교육청 무대에 올린 ‘사운드 오브 뮤직’, 공동육아대안학교 한마당에서 발표한 공연 등 동네 축제나 행사를 적극 활용한다.
“아이들을 연기자로 무대에 세우는 공연 뿐 아니라 동네 사람들하고 즐겁고 밝게 어울릴 수 있는 아이들로 키우는 것이 목표예요.”
주부들을 위한 연극 교실도 진행하고 있다. 토요일에는 연기에 대한 욕구가 보다 많은 학생들, 평일에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억눌린 것을 발산할 수 있는 수업으로 진행한다.
위치 덕양구 행신동 952번지 세신훼미리빌딩 7층
문의 031-974-9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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