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대구 오리온스가 고양으로 연고지를 옮겼다. 약간의 진통이 있었던 이전 과정을 치르면서도 선수들은 경기장에 서야 했다. 낯설기는 시민들도 마찬가지였다. ‘고양시 연고 프로농구팀’의 출현은 반가우면서도 어색했다. 이 중간 지대에 서있는 사람들을 지난 17일 대화역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고양시민과 고양 오리온스를 이어주는 열정 가득한 사람들, 고양 오리온스 서포터즈다.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시즌 8위, 아쉽지 않다
고양 오리온스는 이번 시즌에서 54경기를 뛰었다. 20승 34패로 8위를 차지했지만 팬들은 “잘 뛰었다”며 만족했다. 초반 20경기에서 3승 17연패로 고전하다 시즌 중반을 지나면서 숨은 힘을 발휘했기 때문에 하위권의 성적이어도 아쉽지 않다.
오리온스의 오랜 팬이자 이번 시즌 응원단장인 하정우 씨는 “최근 6년 동안 치른 경기 중에서 가장 성적이 좋아 만족한다”고 했다.
고양 오리온스 서포터즈는 인터넷 커뮤니티(cafe.naver.com/goyangorions)에서 만난다. 경기에 대한 정보를 나누고, 관전평을 올린다. 응원하는 선수에 대한 진심어린 글도 볼 수 있다. 대구 시절의 팬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고양시에 이전한 이후에 오리온스를 접한 이들이다.
“다음 시즌에는 응원 피켓을 현장에서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2층 관람석 공간이 좀 아쉬워요.”
“구단에서 준비하는 이벤트가 더 풍성했으면 좋겠어요.”
온라인 말고 오프라인에서 모임을 연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팬들은 서로에게 혹은 구단에게 하고 싶은 말을 쏟아냈다.
오리온스로 농구를 만나다
이재민 씨는 9살, 12살 난 두 아들의 엄마다. 맞벌이를 하느라 평일에 아이들과 놀아주지 못하는 아쉬움을 주말 스포츠 관람으로 달랜다. 네 식구 모두 야구를 좋아해 멀리 잠실이나 인천까지 다니기도 했다. 고양시에 오리온스가 오면서 이 씨의 가족은 처음으로 농구를 관람하게 됐다.
“전혀 좋아하지 않던 종목이에요. 기본 규칙만 아는 정도였죠. 선수들이 너무 가까이 있으니까 같이 뛰는 것 같고 깜짝 놀랐어요. 몇 번 가다보니 점점 빠져들더라고요.”
이제 이 씨는 관련 기사를 찾아 읽는 열성팬이 되었다. 두 아들은 유소년 농구팀인 리틀오리온스에 가입할 예정이다.
강혜미 씨는 고등학생 때부터 농구를 즐겨 봤다. 이번 시즌 개막전 때 KCC경기를 보러 갔다가 오리온스의 매력에 빠졌다.
“경기 초반에 오리온스가 심하게 지고 있었거든요. KCC에 좋아하는 선수가 있었는데 저도 모르게 오리온스를 응원하게 됐어요.”
선수들이 사진도 흔쾌히 찍어주고 친근한 오리온스의 분위기가 좋아, 강 씨는 이번 시즌 이후 줄곧 오리온스를 응원한다.
응원문화는 아직 미흡
지난해 10월 15일, 오리온스는 시즌 개막전을 치렀다. 많은 시민들이 고양체육관을 찾았다. 그 가운데는 응원단장 하정우 씨도 있었다. 대구가 고향이라 오리온스를 오랫동안 응원해 온 하 씨는 “오리온스 경기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것은 처음 봤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 응원 문화가 없어 관람석은 조용했다.
“응원의 목소리가 하나도 안 나오는 거예요. 그날은 팬들을 파악하기 위해서 응원 계획 없이 정장을 입고 갔거든요. 너무 조용하니까 안 되겠다 싶어서 응원을 이끌었죠. 눈앞이 깜깜했어요.”
경기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자리를 떴다. 이어지는 홈경기에서 패배를 거듭하자 관중은 계속 줄어들었다. 6천 8백 석에 응원석에 앉아 있는 이들은 20명뿐인 날도 있었다.
프로구단이 왔다는 시민들의 바람과 저조한 성적 사이에서 뜨거운 응원 문화가 비집고 들어설 틈이 없었다. 그래도 하나 둘, 농구의 매력에 빠져든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농구와 함께라면 겨울이 춥지 않아
어윤(가명)씨는 오리온스를 통해 농구를 알게 됐다. 집 가까이 생긴 고양체육관에 들러 경기를 본 다음부터 빠져들게 됐다.
“경기 보면서 사람들이랑 다 같이 흥분하고, 그런 것이 참 좋았어요. 지난 겨울동안 오리온스 보러 다니면서 에너지를 많이 얻었거든요.”
김진영 씨는 김강선 선수가 영입되면서 오리온스의 팬이 되었다.
“겨울이 춥지 않아서 좋아요. 야구 시즌이 끝나고 공허해질 쯤에 농구가 시작돼요. 오리온스는 항상 재미있는 것 같아요. 지는 게 익숙해질 것도 같은데 그래도 해내려고 하고.”
이예리(가명) 씨는 “주말이나 주중에 그냥 가까운 곳에 버스 한번 타고 걸어가기만 해도 되는 곳에 경기를 즐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라고 했다. 경기 실적과 상관없이 오리온스는 이미 고양시민들의 일상에 기쁨을 주는 존재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다음 시즌 준비에 여념 없을 선수들만큼이나 서포터즈도 벌써 마음이 바쁘다. 같은 자리에 모여 응원하는 등, 고양체육관의 분위기를 만들어 갈 계획이다. 팬들은 고양 오리온스의 이름으로 이미 새로운 스포츠 문화를 써나가고 있다. 다음 시즌, 이들의 활약이 기대된다.
고양 오리온스 서포터즈가 뽑은 완소 선수
김진영 씨 “이동주 선수는 씩씩거리면서 심판한테 달려드는 패기가, 조상현 선수는 친근한 모습이 매력이다.”
어윤(가명) 씨 “선수들을 다그치기보다 다독거리는 최일승 감독님이 좋다.”
이재민 씨 “대기 선수들에게 눈이 간다. 특히 조윤원 선수, 열심히 하는 모습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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