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다방 ‘세시봉’을 찾아서

잠자는 감성의 문 두드려 줄 촉촉한 음악과 DJ가 있는 곳

지역내일 2012-03-14

얼마 전 TV의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에서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시청자들의 추억을 새록새록 솟아나게 만들었던 가수들이 출연해 화제가 되었다. 빠른 템포에 멜로디를 얹어 수없이 도돌이표를 찍은 듯한 후크송과 현란한 기계음으로 버무려진 인스턴트 음악들이 범람하는 요즘시대에 이들의 음악은 분명 색달랐다. 아니 아름다웠다. 윤형주, 김세환, 송창식, 조영남 등 이른바 세시봉 친구들이라고 불렸던 이들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아마도 7080세대들의 잠자는 감성의 문을 두드려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여고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흥행몰이를 했던 영화 ‘써니’의 영향으로 중년세대들의 마음은 이미 과거를 그리워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제임스딘과 마리린 먼로를 만났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옛 시절이 그리워지기 마련이다. 지금의 7080세대들도 아마 정신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오다 지금쯤 뒤를 돌아보고 싶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런 그들에게 타임머신같은 공간이 있었다. 바로 감성 음악다방 세시봉이 그곳이다.
계원조형예술대학에서 백운호수로 들어가는 초입에 위치한 세시봉.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는 시간에 차를 몰아 그곳으로 달려갔다. 미리 전화로 DJ가 활동하는 시간을 알아놓았고, 행여 DJ타임을 놓칠까봐 마음을 졸였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목조계단을 올라가며 야외 테라스에 걸려있는 그룹 아바(ABBA)의 앨범 자켓 사진을 흘낏 보았다. 이상하다. 벌써부터 맘속에선 낯선 떨림이 느껴진다. 사진 한 장으로도 이렇게 흥분될 수 있다니.
문을 열고 들어섰다. 참 아늑하다. 그리고 벽면 가득 그리운 스타들의 얼굴이 시선을 끌어당긴다. 꼼짝없이 그 자리에 서서 사진들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사진 속에는 지금의 섹시아이콘 이효리보다 더 섹시했던 마리린 먼로와 반항아 제임스딘이 자이언트에서 입고 나왔던가죽 자켓 차림으로 서 있었다. 콧수염이 트레이드마크였던 할리우드의 제왕 클라크 케이블이 영화 속 연인 비비안리와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또 우리나라 가수들이 엉성하고 촌스러운 포즈로 찍은 사진들도 반갑고 정겨웠다. 이런 것인가 보다. 추억은 때론 먼지 쌓인 질그릇처럼 존재감이 없다가 막상 꺼내놓고 보면 명품보다 더 빛이 난다는걸...


가슴으로 듣는 아날로그 LP음악
눈이 즐거워지고 마음이 벅차 오르다 보니 이젠 귀까지 행복해지려는 순간이 왔다. 바로 DJ박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귀를 기울일 차례다. 뮤직박스에서 흘러나오는 DJ의 멘트, 신청곡의 사연을 읽어주는 목소리가 차분하고 매력적이다.
“음악을 좋아하면 마음이 젊어지죠. 특히 예전의 음악들은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들었던 음악들이 대부분이에요. 그 당시 암울했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음악만큼은 젊은층에게 사막의 오아시스같은 역할을 했죠. 디지털화된 요즘 시대에서 다시금 아날로그 음악이 재조명 받고 있다는 건 반가운 일입니다.”
70년대부터 DJ활동을 해왔다는 김석준 씨. 2평 남짓한 부스 안에서 그의 손길을 유난히 바빠진다. 턴테이블 위에 LP판을 올리고 또 벽면을 가득 채운 5000여장의 음반 속에서 신청곡을 골라야하니 말이다. 요즘 CD가 아무리 깨끗한 음색을 자랑한다지만 LP의 지지직하며 귀에 거슬렸던 잡음까지도 이젠 정겹게 느껴지는 7080세대들에겐 음악다방은 아련한 추억이자 그리움같은 공간이 되었다.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안양에는 중앙시장과 일번가 쪽에 수 십 군데의 음악다방이 있었어요. 역 전 보리수와 중앙시장 근처 약속, 동굴, 신신다방이 있었고, 참피언, 들판, 티파니 레스토랑을 비롯해 싱글벙글쇼를 진행했던 강석 씨가 일했던 상아탑도 유명했어요. 이곳 음악다방에는 안양뿐만 아니라 안산, 영등포 등지에서 일하던 직공과 여고생들까지 사복을 입고 드나들 정도로 전성기였죠.”
콜라 한 잔 시켜 놓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음악을 듣던 그 시절. 무슨 사연이 그리도 많았는지 리퀘스트 용지 빼곡이 정성 들여 글씨를 쓰고, 그림까지 그려 자신이 신청한 음악이 나오기를 기다렸던 젊은이들이 이젠 중년이 되어 다시 노래를 듣고 있다. 기타 하나로 삶의 희노애락을 노래하던 포크 가수들이 유난히 많았던 7, 80년대. 자유, 낭만, 열정의 키워드로 동시대를 함께 했던 사람들이 이젠 그 시절이 그리워 이곳을 찾는다. 삶에 치여 변변한 문화 혜택 한 번 누릴 수 없었던 7080세대들에게 이곳 세시봉은 그들의 감성을 일깨워줄 안식처로 인정받고 싶어한다. 친구나 가족, 동창들과 함께 옛 이야기를 나누며 맘 편하게 쉬었다 갈 수 있는 공간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세시봉. 그곳에 가면 학창시절의 나를 만날 수 있다. 

배경미 리포터 ba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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