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공부의 신’을 찾아서- 남기완(서울대 인문계열Ⅱ 1)
“자신에 대한 믿음과 해 보자는 의지로 합격했어요”
살다보면 누구나 제 각각의 모습으로 시련을 맞이하게 된다. 거부할 수 있다면 거부하고 싶은 그 우울한 불청객은 때론 이유가 없다. 그냥 그렇게 와서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린다. 부러움을 넘어 찬사를 보내야만 할 공신을 만났다. 어느 날 찾아온 ‘재생불량성 빈혈’이라는 불청객과 보란 듯이 싸워내며 서울대에 합격한 남기완 군, 그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삶과 죽음의 문턱을 오간 시간에 비하면 공부는 힘들지 않았다
평범한 삶이 내게서 멀어진 순간, 그것은 간절한 소망이 되곤 한다. 기완이가 그랬다. 한창 공부하고 인생을 알아갈 즈음에 찾아온 병마는 평범함에 종지부를 찍게 했다. 중1때 폐렴을 앓고 난 후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채 ‘재생불량성 빈혈’을 진단받는다. 평생 조심하며 수술 없이 사는 사람도 있어 마음껏 운동하지 못하는 불편만 감수하면 되는 줄 알았다. 비록 몸은 아팠지만 어릴 적부터 책읽기를 좋아해서인지, 집중력 때문인지 공부도 잘 했다. 2008년 그 어렵다던 용인외고에 들어갔다.
그러나 보통 아이들의 삶은 허락되지 않았다. 상태가 악화돼 골수이식을 위해 입학한 지 1달 반 만에 휴학을 했다. 1차 수술과 항암치료. 복학 1년 뒤 재발, 그리고 두 번째 이식…. 그 사이 3년이란 시간은 훌쩍 흘러가 버렸고, 학교로 되돌아가기엔 많은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는 홀로 수능공부를 해 대학에 진학하기로 결심한다.
기완이가 독학을 성공적으로 해 낼 수 있었던 데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컸다. 또 하나는 2011년 2월, 퇴원 후 들려온 동갑내기들의 대학 진학소식이었다. 친구들을 보니 부럽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왜 하필 내게 이런 시련이 왔는지 원망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주저앉을 수 없다는 오기가 생겨났죠. 자신의 할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란 구절이 눈에 들어왔어요. 일단 부딪혀서 하는데 까지 해 보기로 다짐했습니다.” 사실 힘든 두 번의 골수 이식을 하면서 삶과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병마와의 사투에 비하면 ‘공부’는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었다.
수능시험 일정으로 학습순서와 시간 배분하기
3월부터 공부에 돌입했다. 정기적인 항암치료를 받으며 독학한다는 건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 그러나 기완이는 언·수는 만점으로 1등급, 외국어는 1개 틀려 1등급, 그 외 탐구영역에서도 1,2등급을 받아냈다. 이런 결과가 가능했던 이유에는 나름의 전략이 있었다. 1년 남짓 고교생활이 전부였기에 공부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학습 순서와 시간배정을 수능시험 일정과 똑같이 맞춰 하루 일과표를 짰어요. 시험 날 당황하지 않고, 미리 시간에 적응하기 위한 복안이었죠.”
기완이는 6시쯤 일어나는 것으로 하루를 열었다. 평소 좋아하거나 수능에 나올 만한 시를 5~6편정도 읽으면서 머리를 회전시켰다. 독서실에서 9시부터 하루 일과표에 맞춰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는 저녁 10시가 되면 집으로 돌아와 잠을 청해야만 했다. 오래 공부하고 싶어도 약해진 몸 때문에 더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대신 골수검사나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가는 날을 제외하고는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규칙적으로 공부했다.
“공부에 앞서 자기의 강점과 약점을 잘 파악하고 시간 분배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불안한 마음에 이과목저과목 건드리다 보면 오히려 모두를 망칠 수 있으니까요.” 자신의 최대 약점은 수학의 미·적분과 확률·통계 파트가 백지 상태라는 것. 과감하게 다른 공부는 최소화하고 수학에 매달리면서 극복해 나갔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지금 현재에 충실하고파
기완이는 정시로 서울대 인문계열Ⅱ에 합격했다. 수능 성적으로 2배수를 합격시킨 후 논술시험을 보는 전형이었다. “서울대에 지원할 성적이 나오자 학원에 다니면서 논술을 준비했죠. 틀을 갖춘 논리적인 글을 쓰는 것은 혼자 하기 힘들더라고요. 하지만 서울대 논술은 예상 밖의 문제가 출제됐어요. 결국에는 독해 능력이 관건이었습니다.” 독학으로 좋은 수능성적을 거두는데도, 합격의 당락을 결정지은 논술에도 독서의 영향력이 지대했음을 거듭 강조했다.
어린 나이에 많은 아픔을 경험했던 그로서는 앞으로의 펼쳐질 삶에 대한 남다른 계획이 있을 것 같았다.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쪽으로 관심이 있고, 글도 써보고 싶어요. 그런데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여러 방면으로 두루두루 경험해 보고나서 천천히 정하려고요. 장래성이 있거나, 보수가 높기보다는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그러나 기완에게는 미래보다 더 간절한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에 충실하자는 것. 하루 앞을 예상할 수 없었던 날들에서 그가 이룬 오늘의 성취는 충실하고자 애썼던 그의 현재들을 대신 얘기해 주고 있다.
■기완이의 홀로 공부 하루 일과
▷9시~10시30분 1교시 언어영역
EBS연계문제집, 수능기출문제만을 교재로 삼았다. 아는 작품이나 지문이 나오기를 기대하기보다 어떤 지문이라도 독해할 수 있는 능력을 독서 등을 통해 길러두면 도움이 된다.
▷10시30분~12시 2교시 수리영역
미·적분과 확률·통계는 정석, 개념원리, 수학의 바이블 등을 보면서 개념부터 익혔다. 그 후 인강을 들으면서 문제를 풀어나갔다. 이해가 안 되면 계속 반복하고, 인강도 되돌려 봤다.
▷1시~2시30분 3교시 외국어영역.
EBS연계문제집과 역대 7개년 수능기출문제만 풀었다. 모르는 단어는 그때그때 외우면서 독해문제에 집중했다. 외고를 다닌 덕에 영어는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2시30분부터 4교시 탐구영역.
서울대 필수과목으로 지정된 국사에 다른 탐구영역의 3배쯤 시간을 투자했다. 제2외국어인 중국어나 그 외 사탐과목들은 EBS인강을 들으면서 정리해 나갔다.
▷저녁 10시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수학문제와 씨름했다. 오전의 수리영역 시간이 인강과 개념서 위주의 공부였다면 이 시간에는 기출문제와 EBS연계문제집을 풀어나갔다.
권성미 리포터 kwons02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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