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단연코 타인의 소유물이 될 수 없다. 먼 과거의 노예 제도나 중세 유럽의 농노 경제 체제에서는 인간을 주인의 소유 재산으로 간주한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현대의 인간은 자신이 자유로운 존재이고, 바로 자신이 자신의 주인이라 여긴다.
예전에는 우리나라도 노비들의 종살이가 있었다. 신분으로는 가족이며 결코 종이 아닐지라도 거의 종처럼 취급받는 이들도 있었다. 며느리들이었다. 지아비의 아내 이전에 시댁어른들과 집안의 소유물로 취급받았다. 지금도 그렇게 기대하는 시부모들이 있을지 몰라도, 신세대 며느리라면 결코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과거의 고정관념에 따라 아직도 타인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독재 국가의 지배자들이 시민들을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간단히 희생시킬 수 있는 소유물처럼 여기고 억압하고 여의치 않으면 무참하게 처단한다. 법정에서 자신이 임용한 사장과 임원들을 주저 없이 머슴이라고 지칭한 대재벌 기업의 어떤 무도한 사업주도 있었다. 그가 소유물로 생각한 사람들 또한 자신을 상대에게 완전히 복속시키고 자유를 포기한 대가로 얻는 이익과 안전을 다른 무엇보다도 더 크게 받아들인 탓도 있을 것이다. 에릭 프롬은 이 점을 간파하고 현대인들이 자유로부터 도피하려 한다고 설파했다.
알코올의존 가정에서 관계가 소유적인 경우가 흔하다. 알코올의존인 가장이 식구들을 소유물로 생각한 만큼이나, 그 배우자 또한 자녀들을 소유물로 여긴다. 자녀들 또한 속마음과는 관계없이 오로지 복종으로 대처한다. 아내를 폭행하는 것을 따졌다고 딸에게 몽둥이로 두들겨 팬 아버지는, 서른이 넘는 딸을 자신의 소유물로 밖에 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더 문제는 그런 남편의 통제에 익숙한 어머니 또한, 교묘하게 자녀들을 억압하고 조종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자신이 필요로 하면 자녀도 원하리라고 간주한다. 친정 식구에 대한 자신의 애틋한 마음을 자녀들 또한 자신과 똑같이 느낄 것으로 단정한다. 혹시라도 그렇지 않으면 서운함에 까부라져버리므로 죄책감에 자녀들은 마음에 없는 말과 미소로 속여야만 한다.
상대가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면, 생각 감정 동기 욕구들이 나와 다른 그 사람의 것으로 인정하고 관계해야 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상대도 그대로 똑같이 생각해야 한다고 하면, 상대를 자신의 소유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아무리 깊은 사랑이라 할지라도, 이는 정신적인 폭력일 뿐이다.
강원알코올상담센터 신정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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