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인] ‘실버를 가르치는 실버’ 컴퓨터강사 이경희
용기와 끈기로 55살에 ‘새 일’ 찾다
“컴퓨터는 세트로 배워야 합니다. 켰으면 끌 줄 알아야 하고 프로그램 다운받았으면 삭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 PC로 두뇌 사우나 시작해 볼까요.” 이경희 강사의 목소리가 강의실 안을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컴퓨터 교실의 어르신들은 마우스를 이리저리 움직이느라 분주하다.
실버전문 컴퓨터강사 이경희(55세). 그도 실버세대다. “젊은 강사들은 ‘이런 식으로 하면 되요, 아셨죠?’ 하고 그냥 넘어가요. 설명 들을 땐 알듯한데 뒤돌아서면 잃어버리는 게 우리 나이잖아요. 그런데 이 선생은 이해할 때까지 ‘무한반복’. 게다가 단계별로 쪼개서 설명해 주니 훨씬 알아듣기 쉽죠.” 70대 수강생이 이 강사를 치켜세운다.
50대 중반 ‘컴퓨터 강사’에 도전
방배노인복지관에서 강의를 시작한 지 두 달 남짓. 이 강사는 ‘스타쌤’을 향한 토대를 튼실하게 다지는 중이다. 복지관에서 올 1분기 컴퓨터 강좌를 접수받을 때도 첫날 오전에 모두 마감되었다는 후문이다.
숙명여대 의류학과 75학번인 이경희씨는 22년간 무역회사 수출 영업부에서 잔뼈가 굵은 산업 전사였다. ‘무역업에서 컴퓨터강사’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궁금했다. “의류학과 출신이지만 ‘디자인 하는 것’보다는 ‘디자인 보는 감각’이 더 좋았고 적성에 잘 맞았죠. 바이어 상담부터 최종 선적까지 다 제 손을 거쳤죠. 아웃도어 배낭이 제 주 전공이었어요.”
여직원이 거의 없던 무역업계에서 똑 부러진 일솜씨가 소문이 났다. 바이어로부터 주문을 받으면 자재 발주부터 생산 물량과 품질을 체크하기 위해 공장을 뛰어다니며 꼼꼼하게 챙겼다. 덕분에 대리부터 이사까지 여성 1호 타이틀은 다 거머쥐었다. “워커홀릭이었죠. 외국 바이어에게 이메일 보내는 등 업무에 당장 필요했으니까 동년배에 비해 컴퓨터를 빨리 배웠죠. 컴퓨터랑 궁합이 잘 맞았죠.” 이 강사는 당시를 회고 한다. 쉰 살에 회사를 퇴직한 후에는 5년간 조용히 가정생활에 충실했다.
실버 가르치는 ‘실버 강사’로 데뷔 성공
“우연히 송파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50대 이상 중장년 여성을 대상으로 국비로 ‘실버컴퓨터 양성과정’을 무료로 개설한다는 광고를 보았어요. 바로 지원했죠.” 서류전형, 면접을 거쳐 20명의 교육생 중 한명으로 뽑혔다. “직장 생활하면서 썼던 오피스 프로그램을 차근차근 복습하며 신입사원을 교육했던 노하우를 살려 컴퓨터 강사로 변신해 보자고 단단히 마음먹었죠.”
일단 방향이 서니 공부에 탄력이 붙었다. 컴퓨터 관련 자격증 취득이 1차 목표였다. 3개월 과정을 치열하게 공부했고 동료 교육생들과 스터디 모임까지 만들어 실력을 쌓았다. 덕분에 ITQ 한글․엑셀․파워포인트 자격증 시험에서 모두 A등급을 땄다. 수료를 앞두고 송파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는 경력을 쌓을 겸 자원봉사를 권유해 송파구자원봉사센터 소속 봉사자들을 대상으로 컴퓨터 강사로 첫 데뷔를 했다. “이경희씨가 시범 강의를 하는 모습을 보고 ‘인물이다’ 감을 잡았죠. 실버 컴퓨터 강사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어르신들 눈높이에 맞게 가르치는 스킬이 중요하거든요.” 송파여성인력개발센터 신인영씨가 귀띔한다. 전문 강사로 손색이 없다고 판단한 센터에서는 일자리 알선에 팔을 걷어붙였고 방배노인복지관 정식 강사로 취직되었다.
“나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수업 교재는 내 손으로 다 만든다. 두 가지를 나 자신에게 다짐했어요.” 수업 시간 30분 전에 미리 강의실에 나가 수업자료를 복사해 놓고 강의실 컴퓨터를 꼼꼼히 점검하며 수강생을 기다렸다. “4시간 수업하려면 보통 7~8시간 강의 준비를 해요. 70대 어르신들이지만 컴퓨터를 잘 다루고 싶다는 열망이 뜨거워요. 집에서도 연습할 수 있도록 자세한 매뉴얼 북을 원하세요.” 이 강사 특유의 카리스마 넘치는 수업 과 성실함에 다들 매료되었다. “첫 수업에서 경계하던 눈빛이 점차 무한 신뢰의 눈빛으로 바뀌는 게 느껴졌어요. 종강 후에는 감사의 문자메시지를 받으니 뿌듯하고 ‘제대로 하고 있구나’ 안심도 되지요.”
“5060 나이 탓 마라. 뭐든 배워라”
실버강사로 성공적인 데뷔를 마친 이경희 강사. 올해 들어 맡은 강의도 늘어났다. “동영상 편집, 블로그와 SNS.... 새내기 강사가 배워야 할 분야가 참 많아요.” 복지관에서 수업을 마친 후에는 컴퓨터학원 야간반에 등록해 보충 공부를 하고 있다며 활짝 웃었다.
그는 시니어 컴퓨터 강사 분야는 발전 가능성이 있는 틈새시장으로 판단하고 있다. “고령화 시대에 다들 디지털 실버족이 되고 싶어하죠. 노인의 마음은 노인이 잘 알기 때문에 실력있는 시니어 강사 수요가 많아질 거예요. 때문에 송파에서 함께 공부한 사람들과 강사 인력풀을 만들어 체계적으로 준비하려고 해요.”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며 이 강사는 들떠보였다.
“한평생 살다보면 뭐든 잘하는 게 하나씩은 있어요. 그걸 찾아 파고들면 새로운 길이 보입니다. 용기와 끈기만 있으면요.” 그는 나이 탓하며 주저앉지 말고 뭐든 배우라고 5060실버세대에게 진지하게 덧붙인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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