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학교가 2013학년도 입시에서 수시를 80%까지 확대한다고 발표하면서 강남의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서울대 가려면 이제 강남을 떠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아이 교육을 위해서라면 세 번이 아니라 열 번이라도 이사할 태세다. 문제는 그 이사에 대한 고민이 ‘진정성 있는 최선의 교육’을 위해서가 아니라 ‘어디서 어떻게 공부하면 입시에 좀 더 유리할까’를 고민한 데서 나온다는 것이다.
중학생 학부모 중에는 중학교 3학년 때까지 강남에서 실력과 경쟁력을 키운 뒤 고등학교는 변두리로 가서 내신도 잡고 스펙도 준비해야겠다고 말하는 이도 있고, 고등학교 때 다른 지역으로 옮기면 이미 그 지역에서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학생들이 반길 리 없어 적응하기 힘들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왜 이렇게 강남 학부모들은 대학 입시에 필사적일까. 그리고 무엇이 이들을 불안에 떨게 하는가.
# 강남, 특히 대치동 주변의 중·고등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부모들 중 절반 정도는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교 입학을 전후로 교육을 위해 강남으로 이사 온 사람들이다. 아이의 학업능력이 강남에서도 경쟁력이 있을 것 같아서, 학업 분위기가 좋을 것 같아서, 명문고에 입학시키기 위해, 주변의 사교육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어서 등 그 이유도 다양하다. 하지만 내신의 불리함을 감수하면서도 이사 온 가장 큰 목적은 경쟁적인 환경에서 공부하는 것이 아무래도 대입에 유리할 것 같아서이다. 그런데 수시 확대·정시 축소로 이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수시 전형은 내신은 기본이고 대학별 고사와 자신만의 색깔을 잘 드러낼 수 있는 비교과와 서류를 준비해야 하는데 강남 학교들이 결코 유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 서울대 수시 전형을 살펴보자. 2011학년도에 서울대는 수시 지역균형전형으로 21%, 수시 특기자전형으로 35%, 정시전형으로 44.%를 선발했다. 그런데 이 전체 비율은 특목고와 강남고교 등으로 나누어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큰 차이를 보인다. 주요 과학고·외고·선발형자율고 등 50개 특목고의 경우 이 비율은 지역균형 0%, 특기자 61%, 정시 38%이다.
하지만 강남의 26개 고교의 경우 이 비율은 지역균형 3%, 특기자 22%, 정시 75%이다. 지역균형전형은 지방고등학교 학생, 특기자 전형은 특목고 학생을 위한 전형인 것이다. 강남 학생의 대부분은 전국 고사인 수능과 논술을 통해 정시로 서울대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수시를 80%까지 확대한다고 하니 강남 학부모들은 불안할 수밖에.
# 여기에 수시전형의 객관성과 공정성에 대해서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입학사정관제 및 수시확대에 대해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38.4%가 반대했으며, 서울·경기 교육특구 지역 학부모의 경우 반대는 48%로 더 높았다. 또한 반대하는 이유로 ‘합격기준이 공정하지 않음’(43.6%)과 ‘입시부담 가중’(35.8%)을 들었다. 특히 서울·경기 교육특구 지역 학부모는 49%가, 대학원 이상 학력의 학부모는 51%가 공정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소수의 입학사정관이 평가하는 전형에서 주관적 입장을 배제하고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특히 수험생 자녀를 키워본 경험이 없는 젊은 입학사정관의 경우 얼마나 학생과 학부모의 절박한 심정을 이해하고 공정하게 평가할지 의문이다.
# 학교가 변하지 않는 상태에서 수시가 확대되는 것도 학부모들의 부담을 가중시킨다. 강남의 수능 전문 학원들은 발 빠르게 내신 강좌를 확대하고 있고, 논술 학원에는 예년과 달리 고1, 2학년까지 문의가 쇄도한다. 하지만 강남 대부분의 고교는 아직도 수능 중심의 정시에 치중한다. 교내 스펙 준비를 위해 각종 대회를 열기도 하고 행사를 개최하기도 하지만 교내 경시대회, 논문대회, 토론대회 등 학생들의 실력을 검증받는 주요 대회의 경우 학교 자체에서 준비해주기 보다 그 대회에 참여하기 위한 또 다른 사교육을 조장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부모나 친·인척 등의 화려한 인맥을 동원해 대회 자료를 준비하기도 한다. 공교육에서 수시의 중요한 전형 요소인 논술과 비교과를 제대로 준비해줄 수 없는 상황에서 수시 확대는 학부모들에게는 사교육비 부담을, 학생들에게는 입시 준비의 부담을 가중시킬 뿐이다.
# 강남 교육의 한 복판에서 살다보니 과도한 교육열을 종종 목격하곤 한다. 비평준화 자율고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중학교 때부터 종종 팀으로 움직이며 아침부터 한밤중까지 유명 강사들의 수업을 받기도 하고, 영재학교나 과고의 직전대비를 한다고 월 수백만 원의 학원비를 당연한 투자로 생각하기도 한다. 강남 학생들만이 아니다.
방학이면 수도권 일대의 손꼽히는 학생들이 로드매니저 맘들에게 이끌려 대치동 일대를 순회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아이들이 고입에서 꽤 성과를 거둔다는 점이다. 또 그렇게 들어간 고교의 좋은 프로그램과 주말 사교육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훌륭한 스펙도 마련해 당당하게 명문대 수시에 합격한다. 물론 그 아이들이 노력한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부모의 경제력과 정보력, 거기에다 조직력과 학습기획력까지 갖춰진 경우가 많다. 이렇게 공부하지 않은 평범한 강남 아이들도 명문대를 바라볼 수 있는 정시의 문을 좀 더 열어둬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선이 리포터 sunnyyee@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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