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헌구의 우리음식이야기⑬]빈대떡과 비빔밥

지역내일 2011-12-19

우리나라에서 3천년 전부터 재배된 녹두는 빛깔은 고운 초록색이며 알이 잘고 매우 귀한 곡물이었다. 녹두 가루로 당면을 만들 수도 있고, 숙주나물·떡고물·녹두죽·녹두묵·빈대떡 등 우리의 일상 식생활에서 별미 식품의 원료로 많이 이용되었다.

우리 민족은 명절에는 여러 가지 지짐을 부쳐 먹었는데 기본 재료로 녹두·밀·옥수수·수수·메밀·감자·완두콩 등이 쓰였다. 이때 배추김치·돼지고기·파·마늘·고춧가루 등을 부재료로 사용했다. 그중 녹두지짐은 옛날에 가난한 사람이 해 먹은 음식이라 해서 빈자떡이라고도 하고, 귀한 손님 접대를 하는데 쓰이는 음식이란 뜻에서 빈대떡이라고도 한다. 녹두지짐은 맛이 매우 독특해서 미식가들이 즐겨 먹는다. 빛깔이 약간 연둣빛을 띠면서 곱고 노릇노릇하게 기름기가 감돌아 몹시 먹음직스럽다. 



녹두의 배릿한 맛과 씹으면 약간 타박타박한 것 같으면서도 매우 구수한 맛이 나는데 돼지비계를 넣어 지진 녹두지짐이 제일 맛이 있고, 뜨거울 때 먹어야 제 맛이 난다. 껍질을 벗기고 맷돌에 부드럽게 갈아 놓은 녹두에 배추김치·잘게 다진 돼지비계·파·마늘·기름·소금·고춧가루로 양념하여 재워둔다. 불에 달군 지짐판에 기름을 두르고 녹두 지짐반죽을 한 국자씩 떠 놓고 골고루 펴고 돼지비계 덩어리를 지짐판 가장자리에 놓고 천천히 굴려 녹이면서 지진다. 

돼지비계는 다른 동물성 지방보다 질이 좋고 맛이 좋은 식용유다.  돼지기름에는 쇠고기에 들어있는 필수지방산인 리놀산이 5배나 들어 있다. 녹두의 부족한 메치오닌과 트립토판 성분을 돼지고기가 보충해 주므로 영양이 잘 보완되고 입맛이 없을 때 입맛을 돋우는 훌륭한 전통 식품이다. 

문헌에 따르면 비빔밥이란 말은 1800년대 말에 등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비빔 형태의 음식은 그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비빔밥에서 한국 문화의 특징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여러 재료를 한데 모아 뒤섞는 요리법이 다양한 개성을 지닌 개체를 하나로 모으는 조화와 융합의 정신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고슬고슬하게 지은 하얀 쌀밥 위에 색을 조화시켜서 날아가는 듯한 새파란 야채 옆에 고사리, 도라지, 오이 등 삼색나물, 또 옆에는 노르스름한 숙주나물 이런 방법으로 가지각색 나물을 둘러놓은 다음에 고기를 잘게 잘라 끓인 장국을 부어 비비기에 적당할 만큼 그 위에는 유리조각 같은 황포·청포 서너 사슬을 놓은 다음 옆에 소고기와 채썬 표고를 볶아 곱게 썰어 고명으로 얹는다. 입맛이 깔끔한 참기름과 고추장을 조금 얹고, 우격다짐으로 밥을 누르지 말고 살살 돌려가며 비빈다. 

고명과 반찬은 식당에 따라, 먹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달라진다. 신선한 육회를 넣는 비빔밥도 있다. 이런 경우는 그릇을 뜨겁게 데워서 주는 경우가 많고, 뜨거운 방자유기를 쓰는 곳도 있다. 계란이 부침이나 찜으로 추가되어 동물성 단백질 섭취를 도와준다. 

비빔밥의 기원인 제사밥의 전통을 살려 붉은빛 고추장을 쓰지 않고 제사에 쓰는 나물이 많이 들어가며 탕국이 따라오는 비빔밥도 있다. 또 하나의 기원으로 생각되는 들밥을 원용한 비빔밥은 신선한 제철 겉절이 채소 한두 가지에 고추장과 밥이 많이 들어간다. 이 수많은 재료들이 잘 비벼지면 원래의 재료가 가지고 있던 성질 이상의 맛, 즉 조화가 일어난다.

비빔밥은 한국인에게 먹기에 간편한 음식이었다. 모두가 먹고 싶은 고급 음식이었던 육회와 비빔밥의 만남이 육회 비빔밥이다. 이 두 가지가 만나서 완성된 비빔밥은 한국인의 마음을 오롯이 담고 있다. 간편해서 더 친근한 ‘한국인의 맛’이 지난 100년 동안 외식업체의 주방에서 이루어진 진화가 한반도는 물론이고 기내식으로 지구촌 곳곳에서 빛을 내고 있는 중이다.

글 구미 에스코드스쿨 조헌구 원장
사진 전득렬 팀장 papercu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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