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온 한 경찰관의 이야기가 매우 자자하다. 전쟁 직후 태어나 구두닦이로 시작한 인생이 복서를 거쳐 경찰관이 되고, 시인에 대학교수가 되더니 매주 한 번씩 아침 방송에 출연하는 방송인이 되었다. 70년대 인기 드라마 ‘수사반장’의 최불암 씨가 맡았던 친근한 형사 역의 실제 주인공 같은 신동선 관장은 강서경찰서를 퇴직한 뒤 강서구 화곡동에서 반달곰체육관을 운영하고 있다.
덩치는 크지만 날렵한 ‘반달곰’ 별명
''반달곰체육관''은 허름한 상가 건물 지하에 있는 복싱 도장이다. 관장은 경찰이자 아마추어 복서 출신인 신동선(55세) 씨다. 그는 30년 경찰 생활 중 13년을 강력계에서 보냈다. "조직폭력배와 살인범 등 700여명을 검거했어요. 내 손에 잡힌 범인이 ''덩치 크고 날렵한 게 꼭 반달곰 같다''고 투덜거려서 ''반달곰''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돌지 말고 쭉 뻗어! 원! 투! 원! 투! 주먹에 힘을 주란 말이야." 신동선 관장의 목소리가 60평 남짓한 실내를 쩌렁쩌렁 울린다. 복서는 관장의 손에 낀 미트를 때리고, 관장은 복서에게 쉴 새 없이 동작을 주문한다. 이들의 눈빛은 숨이 멎을 만큼 날카로웠고, 리듬감 있는 몸놀림은 경쾌하다.
1980년 경찰에 들어와 31년간 강력반 형사, 정보과 형사, 보안과 형사를 두루 거친 뒤 명예퇴직을 하기까지 신동선 경감으로 익숙한 그는 이웃과 가족처럼 30여 년을 지내온 경찰을 천직으로 알던 사람이다. 그러나 욕심 많은 신동선 씨는 경찰로만 불리지 않았다. 암담하던 구두닦이 시절 유일한 희망이었던 복싱은 대통령배 챔피언 실력을 가진 복서였고, 구두를 닦으며 고학으로 9년 만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그는 시를 쓰는 시인이었고, 무엇보다 불우 청소년에게 관심 많은 의리 있는 경찰이었다.
경찰 입사 초기만 해도 경찰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이 좋지 않아 나름 해결 방법이 무엇인지 고심하던 중, 우선 나부터라도 국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경찰이 되자고 다짐하고 실천한 것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 당시 80년대 초만 해도 영세민들에 대한 처우나 의료혜택이 활성화되지 않아 일반 서민들이 마음대로 병원을 이용하는 것도 만만치 않을 때였다. 의료계 문턱이 높을 때, 말단 순경 신분으로 어려운 사람을 찾아다니며 도와주었고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주민들 사이에선 특별한 경찰관으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이웃사랑의 꿈 사각 링에서 실현
“박봉과 격무에 시달리면서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나는 국가가 인정하는 국립경찰이라는 긍지를 갖고 뛰어다니자 많은 이들이 협조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생활이 어려운 산모를 만나면 출산을 도왔고, 아픈 사람들을 보면 수술을 도와주었다. 불우학생들을 만나면 장학금을 주면서 진학을 도와주었고, 영세민들에게는 사비를 털어 생활비 를 보태주었다. 직업이 없는 사람들에겐 백방으로 뛰어 다니면서 취업알선을 알선했다. 그리고 그가 구속시킨 범인들에게 영치금을 넣어 주거나 면회를 다니면서 다시 범죄의 길로 들어서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이런 그의 이웃에 대한 관심과 봉사는 가족들에도 환영받는 일은 아니었다. 사명감에 불타던 시절, 딸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아내가 가출을 했다. “오지랖 넓은 경찰관의 가족으로 사는 게 너무 힘들었던 모양이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신동선 관장. 지금은 새 사람을 만나 화목한 가정을 일구었지만 그땐 정말 힘들었단다. 저녁이면 어린 딸이 고사리 손으로 저녁상을 차려 주었고, 밤늦게 잠복을 나갈 때는 어린딸을 혼자 둘 수 없어 데리고 가는 경우도 있었다. 당시를 기억하면 딸이 가슴에 걸려 명치가 아리다.
그렇지만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여러 차례 전국복싱대회에 출전하여 1985년 미들급에서 우승하는 등 경찰복서로 이름을 날리면서 청소년 선도에 복싱을 제대로 활용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본 주민들이 강서구 화곡동에 권투체육관을 차려주었다. 지금의 반달곰 체육관이다. 무보수 트레이너로 수백 명의 불우청소년들에게 복싱을 가르쳐 세계챔피언, 동양챔피언, 한국챔피언 등 프로복서 150여명을 배출했다. 이런 선행은 그에게 내무부 장관상과 행자부 장관상 보건복지부 장관상, 서울시장 상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을 안겨 주었다.
주어진 인생 멋지게 살고 싶어
이제 신동선 관장에게 복싱을 배우는 사람들은 불우 청소년만이 아니다. 외국인들을 비롯해 다양한 사람들이 신 관장과 함께 땀을 흘리며 마음과 인생을 다듬어 나간다. 백여 명의 관원들은 10대 고등학생에서 30대 민항기 조종사와 고교 교사, 40대 공무원 등 나이와 직업이 각양각색이다. 반달곰체육관에 다닌다는 걸 빼면 뭐라 한마디로 묶어 말하기 어려운 그룹이다.
이들을 한데 묶는 반달곰체육관은 일종의 비영리 사업장이다. 한 달 수강료는 5만원이지만 관원들이 실제로 내는 돈은 각자 형편에 따라 들쭉날쭉하다. 신 관장은 "350만원쯤 들어오면 임차료·전기료·수도료 내고, 사범 1명 월급 주고, 남은 돈 20만~30만원으로 어려운 집 아이들을 돕는다"고 한다.
아직도 남에게 베풀면서 살 수 있는 것에 감사하는 신 관장은 경찰에 재직할 때도 직함이 서너 개였지만 지금도 마찬가지다. 오산대학교 경창행정학과 외래교수, KBS 아침마당 고정 패널에 이르기까지 그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많은 수식어를 사용해야한다. 이제 거리에 나서면 방송에서 본 분이라며 신 관장에게 인사를 건네는 주민들이 점점 늘어난다.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 달려온 인생은 아니지만 30년이 지나면서 그는 정말 많은 것을 갖게 되었다. 그중 제일은 주변의 사람들이다. 이웃과 진심을 나누며 주어진 인생을 정말 멋지게 살고 있는 그를 지켜본 많은 사람들은 또 그의 후원자가 된다.
세계 어디에서도 지역 주민들이 돈을 모아 경찰관에게 체육관을 차려준 예는 없을 것이라며 지하 허름한 그 체육관을 신 관장은 정말 자랑스러워한다. 반달곰처럼 우직한 모습으로 오랜 시간을 성실하게 살아온 그는 정말 반달곰처럼 희소가치가 높아 보호해야 하는 이 시대의 기념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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