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 지명 유래 알아볼까?

꼬챙이, 당살미, 말무덤이, 찬우물…신기한 전설도 전해 내려와

지역내일 2011-10-19 (수정 2011-10-19 오후 2:58:29)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고장에 대한 내용이 소개된다. 그 고장의 근원지와 역사 그리고 지명 유래 등 고장의 모습에 대해 전반적으로 배우게 된다. 그렇다면 안양시는 어떤 유래와 전설을 간직하고 있을까?




안양은 극락정토의 세계
안양의 역사는 율목군이라는 행정명칭이 있으나 이전의 원삼국시대와 선사시대에 관한 기록은 없다. 원래 안양이란 명칭도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해 창건된 안양사라는 절에서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 정조가 사도세자의 능행을 위해 가설한 만안교의 안(安)자와 함께 양(養)자는 후세 사람에게 인륜의 근본인 효의 뜻을 살리기 위해 쓰여진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추정한다. 또 1941년 시흥군 서이면이 안양면으로 개칭되며 쓰였는데 안양이란 불교에서 마음을 편하게 하고 몸을 쉬게 하는 극락정토의 세계로 모든 일이 원만하여 즐거움만 있고 괴로움은 없는 자유롭고 아늑한 이상향을 나타낸다.
안양시에는 재미있는 옛 지명도 많다. 지금의 석수1동 옛 지명인 구룡마을은 관악역 동쪽에 자리잡은 마을로 한국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동국실업 주변에 10여 채의 민가만 있었다고 한다. 이 마을 지명은 석수1동 3통 노인회관 자리가 풍수로 보아 좌청룡이 완연한 명당지라 하여 구룡목이라 칭한데서 유래되었다는 것. 구전에 따르면 이곳이 명당터라 조선시대 어느 왕비의 묘를 쓰려다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동구능에 썼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지금의 갈산동을 나타내는 당살미는 죽산 안씨의 집성촌으로 갈미 서쪽에 있었던 마을이었다. 일제 강점기 이전만 해도 의왕시 내손동 갈미마을과 평촌동 갈미마을은 본래 한 마을로 오순도순 살아오면서 모락산 중턱에 당집을 짓고 마을의 안정과 풍년을 기원하는 산신제를 해마다 음력 10월 초에 지냈는데 당살미라는 마을 명은 이 당을 모신 모락산의 산세가 이곳 마을에까지 이르렀다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비산3동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도 흥미롭다. 원래 비산3동은 마장골로 불리워졌는데 예전에는 구름울에 속해 마장울을 웃말, 구름울을 아랫말이라 칭했다. 마장골이란 조선시대 관가에서 사용하던 말을 이곳에서 사육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후대에 내려오면서 다음과 같은 전설로 인해 매곡동으로 불리우고 있다. 조선조 중엽 마장골에 사는 어느 농군의 아내가 갓난아이를 풀밭에 뉘여 놀게 하고 김을 매고 있는데 매가 갓난아이를 채어 날아갔다고 한다. 아이를 잃은 아낙네는 그 날로 몸져눕게 되었는데 그 후 이 마을 나무꾼이 이곳에서 나무를 하려고 산에 오르려는 순간 커다란 매가 공중을 빙빙 도는 모습을 보고 갓난아이가 있는 곳을 확인하게 된다. 후에 아이를 구하려던 원님과 포졸들이 매의 둥지로 갔지만 아이와 매는 자취가 없어져 그때부터 마을 이름을 매곡동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죽은 말을 매장했던 관양1동 말무덤이
관양1동은 예전에 뺌말과 가운데말 사이에 자리잡은 마을로 조선시대 마장골에서 기르던 말이 죽으면 이곳에 매장했다고 하여 말무덤이라 불렀다. 또 망령골이라는 지명도 있는데 신라말기에 어떤 사람이 서울에서 나무를 팔고 과천을 거쳐 이곳을 지나가는데 어느 여인이 소복을 하고 나타나 하루 밤을 유숙하며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그 후 여인이 다시 나타나 하는 말이 ‘관악산 바위틈에 아이가 있으니 가보시오’라고 하며 홀연히 사라졌다는 것. 여인이 일러준 대로 현장에 가보니 바위 틈에서 아이가 울고 있어 데려다 정성껏 기르니 이아이가 후에 귀주대첩의 영웅 강감찬 장군이라는 것이다.
관양2동 인덕원은 조선시대 내시들이 살던 곳이라고 한다. 이들은 비록 거세된 몸이지만 환관이라 하여 궁중을 출입하여 임금과 가까이 있는 신분으로 높은 관직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래서 남에게 덕화를 베푸는 사람이 사는 곳이란 의미로 인덕이라 칭했다가 공용 여행자의 숙식을 제공하기 위해 원을 설치하면서 인덕원이라 부르게 되었다.
찬우물은 주접동 북쪽에 위치한 마을로 안양5동에 속한다. 충훈탑 아래에 찬 샘우물이 있어 그 인근을 찬우물이라 칭하였다. 이 우물은 일제강점기만 해도 식수와 농업용수에 사용되었으며 현재도 약수로 이용되고 있다. 또 안양5동에 속한 교하동은 조선조 중엽에 이 마을에 어느 가난한 부부가 외아들과 함께 살았는데 넉넉하지 못한 살림이라 아들을 공부시킬 수 없게되자 그 아들이 서당 선생의 도움으로 무료로 글을 배워 노력 끝에 과거에 합격하였다. 이에 조정에서 그에게 높은 관직을 제수하려 했으나 끝내 사양하고 오직 이곳 마을에 향교를 짓고 우매한 백성을 가르칠 것을 고집하자 이에 감탄한 임금이 이곳에 커다란 집을 지어주고 교화당으로 명명해 주었는데 그 후부터 이 주변의 마을을 교화동으로 불렀다고 한다.
배경미 리포터 ba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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