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가니’로 광주인화학교 문제가 전 국민의 울분을 터뜨렸다. 광주 시민으로서 수치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뼈아픈 기억을 계기로 ‘성폭력에 대한 예방과 대처방안’을 재조명해볼 기회다. 본지는 광주시 성폭력예방교육 현주소를 점검해 본다. - 편집자주
2005년 광주인화학교 성폭력사건. 당시 PD수첩을 통해 특수학교 교사가 장애인학생을 성폭행했다는 어이없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사건이었다. 사건은 가해자 법적 처벌로 일단락된 듯 했다. 하지만 6년이 지난 지금, 영화 ‘도가니’가 상영되면서 당시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지기 시작했다. 당시 사건에 대한 기억이 희미하거나, 잘 몰랐던 사람들에게도 관심의 대상이 될 만큼 도가니에 대한 후폭풍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궁지에 몰린 광주시와 교육청, 광산구청, 경찰 등은 여론에 밀려 연일 후속대책을 내놓느라 야단법석이지만 정작 청소년 성폭력 예방 대책이 별로 없다는 게 학부모 생각이다.
광주 청소년성폭력 실태조사
지난 4일 여성가족부 위탁시설인 광주해바라기아동센터 주최로 ‘청소년의 성폭력에 대한 태도 및 대처방안’에 대한 심포지엄이 열렸다. 사회문제와 맞물려 다양한 성교육 관련기관에서 참여하는 등 지역사회의 관심을 모았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아동·청소년 성폭력 실태가 낱낱이 공개됐다.
국가청소년위원회에서 발표한 성폭력 피해자 현황을 보면 13세 미만 청소년 대상 성범죄 피해자 비율이 25%이상을 차지했다. 범죄 유형도 13세 미만은 ‘강제추행’이 70.4%로 가장 많았다. 성폭력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도 60~70% 이상이 ‘아는 사람’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통계에 따르면 ‘친인척’ 성폭력은 해마다 늘고 있다.
성인용 비디오, 영화, 동영상 등 유해매체를 처음 접하는 시기도 중1때가 가장 높았다. 유해매체를 보는 장소는 집이나 친구 집 응답비율이 가장 많았다.
또래에 의한 성폭력 피해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가해자 연령 또한 낮아지고 있는 추세다. 경찰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미성년 가해자가 2006년 1811명에서 2008년 2717명으로 증가했다. 이런 추세라면 성폭력 범죄가 늘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따라서 체계적인 성폭력예방 교육과 대책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실정이다.
광주 중학생, 성폭력 인식 낮아
성폭력에 대한 청소년들의 생각 수준도 낮았다.
광주해바라기아동센터는 지난 4월 광주지역 중·고생 성에 대한 태도와 성폭력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총 46개교 50학급 174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남학생 상당수가 ‘여성들이 스스로 조심하는 것이 성폭력을 방지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답했다. 김해숙 광주해바라기아동센터 임상심리전문가는 “성폭력이 발생할 경우 원인을 피해자 개인의 특성이나 행동문제로 귀결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성폭력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낮은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성폭력 피해를 당했을 때 제대로 대처를 못하는 이유에 대한 질문에서는 ‘알리고 싶지 않아서’가 가장 많았고, ‘보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그 뒤를 이었다. 그 외 ‘방법을 잘 몰라서’, ‘문제제기를 해도 소용이 없어서’ 등의 답변이 나왔다.
김해숙 전문가는 “설문조사 결과 중학생의 경우 성폭력에 대한 인식과 지식이 올바르게 확립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지 못한 채 문제행동을 유발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집중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학생 대상 성폭력 예방 교육 1년 2시간
그렇다면 학교 내 성폭력 예방교육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학교 내 성교육이 2009년부터 학교자율화사업으로 선정되면서 교육청은 학년별로 10시간 성교육 의무를 지침하고 있다. 그 중 성희롱·성폭력예방교육 2시간, 성매매예방교육 1시간을 의무교육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성교육을 위한 별도의 과목이 없는 관계로 정확한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오은주 광주시교육청 인성복지건강과 장학사는 “성교육이 교육법상 의무교육이기는 하지만 이수를 안 한 학교에 대한 법적 처벌 조치가 없어 이수교육에 대한 점검조치가 미흡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교육은 학교 내 보건교사나 외부강사에 의존하고 있다. 보건교사를 위한 성폭력예방교육은 해마다 평균 30시간씩 외부 전문강사를 초빙해 이수하도록 하고 있다. 학교 인력으로 학생교육 이수가 어려울 경우에는 외부강사를 초빙한다. 하지만 외부강사의 경우 이론적 배경 위주로 교육하기 때문에 교육효과에 대해서는 미지수다. 광주시교육청에서도 성폭력예방교육을 위한 전문적인 인력풀을 양성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 게다가 각 학교에서의 교육이수 여부를 체크하는 것도 취약하다는 입장이다.
그나마 일반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책자는 구비됐지만 특수교육팀을 위한 교육용 책자가 없어 특수학교성폭력예방교육도 미흡하기는 마찬가지다. 더욱이 해마다 성폭력 사건이 증가하는 추세를 감안하면 한두 차례의 성폭력 교육만으로는 예방교육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학부모들의 입장이다.
중학생과 초등생 자녀를 두고 있는 김성진(일곡동)씨는 “성폭력 예방교육은 미래를 보고 하는 교육이다”면서 “당장 성과가 없더라도 꾸준히 성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하는 게 중요하다”고 얘기했다.
도움말: 광주해바라기아동센터 김해숙 임상심리전문가, 광주광역시교육청 인성복지건강과 오은주 장학사, 정종재 장학사, 광주여성의전화 박종희 상담센터장
김영희 리포터 beauty02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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