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를 찾아오는 환자들이 공통적으로 속 쓰림, 더부룩함, 명치 끝 통증, 복부 팽만감, 구토와 오심, 역류, 잘 체함 등과 같은 증상을 호소한다. 혹시 큰 병에 걸린 게 아닌가 싶어 병원을 찾아가 위 내시경, 대장 내시경 등 각종 검사를 받아봤지만 위장에는 별 다른 이상이 없었고, 신경성이니 스트레스 받지 말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면 좋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소리만 들었다고 했다.
환자 입장에서는 암과 같은 무서운 진단이 나오지 않아 다행이지만, 한편으로는 계속 증상은 있고 분명히 아픈데 신경성이라고만 하니 답답하고 기가 차다. 도대체 내시경으로는 문제가 없다는데 계속 증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뭘까?
물도 못 넘기는데, 위장은 이상 무?
3년 전, 키 162cm에 몸무게 38kg의 50대 후반 여성 환자가 찾아왔다. 최근 2~3년 사이에 몸무게가 15kg이상 빠졌다고 했다. 그녀는 물만 먹어도 목에 걸려 곧 토할 정도로 거의 식사를 못해 주로 대학 병원에서 영양제를 맞으며 고통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분명 암에 걸린 거라고 생각하고, 수많은 병원을 다니면서 위장과 관련된 검사는 안 받아본 게 없었어요. 근데 그 때마다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죠. 병원에서 처방해주는 약도 그 때 잠깐 괜찮아지나 싶다가도 또 속은 답답하고, 울렁거리고... 도대체 왜 이러는지 이유를 모르니까 더 불안했어요.” 라며 그녀는 그간의 생활을 털어놨다.
행상을 했던 그녀는 제 시간에 식사를 할 수 없어 틈날 때마다 밥을 물에 말아 급하게 넘기는 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때가 많았다. 당연히 식사는 쪼그리고 앉아서 혹은 서서 먹는 식이 대부분이었고, 집에 돌아가서는 허전한 공복감 때문에 늦은 시간 빵이나 라면 등을 먹고 자기 일쑤였다.
필자가 복진을 해보니, 복부 전체가 돌 같이 단단히 굳어 있었다. 위장이 굳어져 있으니 당연히 위장 운동이 제대로 될 리가 없어 음식을 아래로 내려 보내지 못했고, 제대로 소화 과정을 거치지 못하니 영양분이 흡수될 리 만무했다. 몇 년 동안 그녀를 괴롭혔던 원인은 위장 조직 즉 위장 외벽이 굳어져 생긴 ‘담적병’이었지만, 위장 속을 들여다보는 내시경으로는 관찰이 되지 않으니 ‘위장 이상 무’라고 진단했던 것이다.
암이 자라고 있었는데, 약간의 신경성 위염입니다...
지인을 통해 44세 남자로 미국에서 사업가로 성공한 해외 교포 환자가 찾아온 적 있었다. 조카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모처럼 방문한 한국. 온 김에 종합검진을 받았는데 위암 말기라는 끔찍한 판정을 받았다. 불과 1년 전 미국에서 내시경 검사를 받았을 때는 약간의 신경성 위염이라고 했는데, 1년 사이에 위암 말기로 진행됐으니 정말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식도락가였던 그는 간혹 과식을 하면 명치끝이 조금 갑갑한 정도의 증상만 있었고, 배를 만져보면 뭔가 단단하고 약간의 통증이 있었지만, 오히려 소화 때문에 크게 고생한 적은 없었다며 울분을 토로했다. 안타깝게도 결국 6개월 뒤에 유명을 달리했다. 위암 말기에 이를 정도까지 위장 문제가 진행 중이었는데도 내시경이 이를 탐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신경성 위장병, 숙명 아니다. 사소한 증상이 키우는 담적병!
내시경 상으로는 큰 문제가 없지만, 환자의 증상이 계속되거나 더 심해지는 경우가 많다. 간혹 심각한 병으로 갑자기 나타기도 한다. 신경성 질환이라는 것이 뚜렷한 원인을 찾지 못하고 근본적인 치료법도 없으니 이런 질환을 가진 사람들은 만성, 숙명이려니 하면서 그냥 살아가기 때문이다.
신경성 소화불량과 같은 기능성 위장 장애는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사소한 증상들은 겉으로 드러난 의학적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수 년 혹은 평생 동안 환자를 괴롭히는 ‘담적병’을 키울 수 있고, ‘담적병’은 생명을 위협하는 병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몸이 보내는 분명한 SOS 신호를 지나치고 방치하지 말자.
글. 최서형 박사 (위담한방병원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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