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른들의 형평성이 며느리들을 책임감 있게 해

고부갈등 VS 동서시집살이

낀 세대 며느리의 명절은 10년 째 똑같다.

지역내일 2011-09-02


명절이 가까워지면 마음이 설렌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간이 가는 것이 두려운 사람도 있다. 전자는 자식들을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일 것이고, 후자는 할 일이 태산처럼 쌓여있는 며느리들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최근 이 같은 명절 풍속도가 변하고 있다. 시어머니 눈치를 보는 며느리가 아니라 시어머니와 젊은 손아래 동서의 눈치를 봐야하는 낀 세대 며느리들이 느끼는 만만치 않은 스트레스는 상상을 불허한다.
만나는 가족 친지들로 인해 시끌벅적 즐거워야 할 명절이지만 반대로 오랜만에 만나다보니 그 동안 참아왔던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동서 간 혹은 형제간의 다툼은 다반사고 시댁과 며느리, 장인·장모와 사위간의 갈등도 적지 않다. 그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최근 시어머니와 손아래 동서사이에 ‘낀 며느리’들의 신(新)고부갈등이 도드라지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손아래 동서가 맞벌이를 해 손자·손녀까지 키우는 시어머니의 눈치를 보느라 미리 장을 봐 음식을 해놓기도 하지만 이조차 반가워하지 않는 눈치다. 오히려 시어머니 귀에만 살짝 전하는 ‘부담스럽다’는 동서의 말이 화살로 돌아온다. 손아래 동서와 시어머니의 눈치를 보며 명절을 보낸다는 ‘낀 세대 며느리’들의 답답한 심정을 들어보았다.


부제 : 시어머니와 손아래 동서 눈치 보는 신(新)고부갈등
지난 해 혼기를 놓쳤던 시동생을 결혼시킨 이춘애(가명.54) 씨는 며칠 후 다가 올 추석만 생각하면 골치가 아프다. 고혈압에 당뇨기가 있어서 몸을 조심해야 하는데도 이번에도 역시 명절 준비를 혼자서 해야 한다. 이 씨는 “시동생이 결혼을 할 땐 정말 진심으로 축하를 했었다. 장남인 남편과 나이 차이가 많아 아들처럼 키우기도 했던 시동생이어서 더 애틋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꽤 많은 동서는 살림을 할 지 모르고, 일흔이 넘은 시어머니는 당신의 아들에게 시집을 온 것만으로 고마워서 늘 상전처럼 대접한다.”면서 “허니문 베이비를 가져서 설날에는 방 안에 앉아 떡국을 받아먹더니 추석이 되자 이제는 날 달이 되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지경이다.”고 속상함을 토로한다. 이 씨는 “어차피 결혼 후부터 지금까지 집 안 대소사 모두 혼자서 다 처리해왔었다. 내가 임신했을 땐, 몸을 움직여야 잘 낳는다고 일을 시키던 시어머니가 이제는 아이가진 막내며느리는 위험하다고 내게 밥상까지 차리도록 유도한다. 더구나 잘 지내왔던 시동생 역시 내 눈치를 보고, 동서 역시 모든 일을 시동생과 시어머니에게만 이야기하고 미뤄 결국은 내 일이 되는 것이 속이 상할 뿐”이라고 말한다.
윤정자(가명. 50) 씨도 별반 다르지 않다. 손아래 동서가 8살 정도 나이차가 있고, 맞벌이를 하다 보니 시어머니가 아이 둘을 집에서 돌보고 있어서 더 불편한 심기이다. 윤 씨는 “집 안에 무슨 일이 있기만 하면 시어른들은 나를 찾는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짜증이 난다. 자기 가족이 더 잘 살고, 편히 지내려고 맞벌이하면서 그 피해는 왜 고스란히 내가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시어머니는 피곤하겠다고 동서에게 쉬라하고 아이들 돌보며 모든 일은 결국 내가 해야 하는 구조로 돌아간다. 남편 역시 ‘하면 얼마나 한다고’ 하는 말로 나를 더 짜증나게 한다. 맞받아치긴 하지만 속이 상하는 건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고 심경을 토로한다.


부제 : 전통적인 교육의 며느리와 신세대 얌체 며느리
50대의 며느리들은 대부분이 전통적인 ‘여자의 역할’이라는 가부장적인 사고의 틀 안에서 교육을 받으며 살아왔다. 물론 그 안에서 개혁을 꿈꾸고 다소 변혁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오십이 넘어서고 아이들이 성장해 품을 떠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자유스러워지기는 시기를 맞고 있을 뿐이다. 이제 좀 편안해지고 싶은 시기에 손아래 동서들의 얌체 같은 여우 짓은 심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당연하다.
김영혜(가명. 52) 씨는 “아마도 올 추석에도 시어머니와 우리 가족만이 차례를 모시게 될 것 같다.”며 “아들만 넷이 있는 시댁인데 명절이 되어도 가족이 잘 모이지를 않는다.”고 말한다. “시어머니의 형평성에 제동이 걸린 게 발단이다. 몇 해 전 명절 기간 동안 막내며느리가 친정식구들과 함께 떠난 해외여행을 허락한 이후부터 시작됐다. 처음이 어렵지 그 이후에는 둘째 며느리와 셋째까지 가세해 대놓고 여행을 가버리는 바람에 말릴 겨를도 없었다.”는 설명이다.  
명절이 오히려 더 조용해지는 현상에 대해 가족문제 상담소 김은영 소장은 “한국 사회의 급격한 가족 구조 변화가 가져온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가족의 범위가 점차 축소되다 보니 서로의 공간에 배우자와 자식이 아닌 사람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부제 : 가족 구조 변화에 따른 스트레스
여성가족부가 2005년에 이어 지난해 조사를 실시해 최근 발표한 ‘제2차 가족실태’ 결과에서 가족의 의미변화는 눈을 의심하게 할 정도였다. 조사 결과 가족의 범위는 대체적으로 축소됐다. 배우자의 부모도 내 가족이라고 답한 사람은 50.5%에 그쳤고, 자신의 부모를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77.6%로 나타났다. 5년 전 92.8%보다 크게 줄어든 수치다. 이어 형제·자매를 가족으로 여기는 응답자 역시 63.4%로 5년 전의 81.2%보다 큰 폭으로 줄었다.
사회적으로 1인 가구와 아이가 없는 부부가 늘었고, 혈연보다는 동거 개념의 협소한 가족관이 확산되면서 시어머니는 물론 며느리들이 느끼는 유대감이 과거보다 끈끈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핵가족을 이뤄 살면서 협소한 가족관에 익숙한 사람들이 명절을 비롯해 일 년에 몇 번 정도만 일시적으로 ‘대가족’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면 서로 어색해진다는 것이 주류이다.
바로 이때 이 어색한 상황을 타파하고 가족 간의 동질성을 찾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는 위치가 ‘집안의 안주인’인 시어머니지만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회적으로 가족의 개념과 범위가 대폭 축소되는 바람에 과도기적인 가족 변화를 가장 절감하게 되는 위치가 ‘시어머니’이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시어머니에게 바짝 붙어 음식과 살림살이를 배우던 과거자신들의 모습과는 달리 세대가 바뀌어 현대 며느리들이 이를 거부하면서 당혹감과 불안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는 설명이다.
범현이 리포터 baram8162@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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