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주 1년이 넘은 J씨가 처음으로 지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먼저 얘기한 것은 아버지의 과음 문제였다. 취한 아버지의 폭언과 폭행, 어머니의 짐승 같은 흐느낌, 겁에 질려 숨죽이고 잠 못 자던 많은 밤들, 마지막에는 중풍으로 식물인간이 된 아버지의 마지막 6년 등등 과음하는 아버지에게 무력하기만 했던 한 어린 아들의 고통과 울분이 끝이 없었다.
8살 때 자기도 모르게 ‘O새끼’ 라며 아버지를 욕해 스스로 놀라고, 속으로 아버지가 죽어버렸으면 하고 바란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남들이 욕할까 봐 그런지 아버지를 자꾸 옹호하려고 했다. “그래도 아버지가 남긴 재산으로 지금껏 살고 있다.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아무 것도 못하는 내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었겠느냐?” 하지만 더 나은 환경이었다면 그가 훨씬 더 유능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
어머니와 관계에서도 힘든 점이 많았다. 남편에게 실망한 어머니는 외아들인 J씨에게 기대를 걸고 지나치게 공부를 강요한 것 같다. 공부하라고 잠을 제대로 재우지 않은 어머니에 대해 원망을 쏟아냈다. 학창 시절 내내 키가 작아 남들에게 무시를 받았는데, 이는 잠을 못 잔 탓이라며 어머니를 원망했다. 남편이 교사인데다 자긍심이 부족한 때문인지 그의 어머니는 남달리 도리에 집착했다. 어쩌다 아버지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을 내비치면 이해는커녕 오히려 아들을 나무랐다고 한다.
아버지의 과음으로 인한 고통 때문이었는지 어머니는 평소에 늘 속이 좋지 않았다. 내과에서 검사해도 이상이 없어 소위 신경성이었던 모양인데, 그는 어머니가 위암이 아닌가 하고 걱정했다. 불안하면 으레 그렇듯이 앞질러 염려하는데, 그의 경우에는 어머니의 암을 상정한 것이었다. 아마도 그에게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일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혼자 남아 늘 술 취한 아버지와 어린 누이와 집안을 챙겨야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 어떻게든 어머니가 암에 걸리지 않게 하는 것에 집중하였다. 무언가 착한 일을 하면 천주님이 고쳐 주리라 생각해 그가 찾은 착한 일은 매일 동네 쓰레기를 치우는 것이었다. 오갈 때마다 쓰레기를 바지주머니에 담아오곤 했는데 이런 강박적 행동 때문에 그의 어머니가 고 3학년 아들을 처음으로 정신과에 데려갔다.
자신을 걱정에 몰두시킴으로써 얻는 이득이 있다. 고통스럽지만 마땅히 직면해야 할 많은 현실의 문제들을 잊을 수 있고 잠깐이라도 마음이 견딜만하기 때문이다.
신 정호 (연세 원주의대 정신과 교수, 강원알코올상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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