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원고마감에 쫓기면서도 집필을 서두르는 법이 없다. 무릇 원고란 마감에 좇기며 써야 제 맛이라는 지론을 가졌기 때문이다. 여간해서는 의견일치가 쉽지 않은 먹물들도 이 ‘똥줄론’에서만큼은 어렵지 않게 의기투합한다. 똥줄이 타야 원고가 나온다는 속설이다.
‘똥줄론’은 게르름의 소산일 뿐이다. 정신과 의사 문요한은 <굿바이, 게으름>(더난출판, 2007)을 통해 게으름도 질병이라고 지적한다. ‘빈둥빈둥 노는 것’만이 게으름이 아니며 게으름은 우리 생활 전반에 깔린 고질적인 습관들을 통칭하는 것이며 저절로 고쳐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분명 골치 아픈 질병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게으름은 실로 다양한 양태로 우리 몸에 붙어 있다. 뚜렷한 방향성도 없이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나 중요한 일을 뒤로 한 채 사소한 일에 매달리는 것, 스스로를 완벽주의라는 덫에 걸려 결정을 끊임없이 미루는 행태, 늘 바빠 보이지만 실속은 없고, 똥줄이 타야만 일이 되고, 능력이 되면서도 도전하지 않고 머뭇거리는 것, 그 모든 것들이 게으름이라는 것이다.
책께나 읽은 축이라면 이쯤 버트런드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나 피에르 쌍소의 <게으름의 즐거움>을 슬며시 내밀지 모른다. <굿바이, 게으름>은 그런 항변조차 일거에 날려버린다. 러셀이나 쌍소가 ‘찬양’하거나 ‘즐겼’던 게으름은 정확하게는 ‘느림’이나 ‘여유’라는 말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게으름과 여유는 명백히 구분되어야 한다. 여유는 능동적 선택에 의한 것이고, 게으름은 선택을 피하기 때문에 찾아오는 것이다. 여유는 할 일을 하면서 충분히 쉬는 것이지만, 게으름은 할 일도 안하면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것이다. 삶의 풍요로움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여유이고, 후회만을 남기는 것은 게으름이다.”(57쪽)
게으름은 천의 얼굴을 가졌을 뿐 아니라 ‘변신의 귀재’이기도 하다. 선택회피, 시작의 지연, 약속어기기, 딴 짓 하기(대체행동), 철퇴(withdrawal), 눈치 보기, 서두름, 즉각적 만족추구와 중독 등이 모두 변형된 게으름의 행동양태들이다.
서두르는 것도 게으름인가? 저자는 서두름이야말로 게으른 사람들의 전형적인 행태라고 일침을 놓는다. 미루지 않고 꾸준히 처리했어야 할 일을 ''똥줄''이 탈 때까지 지체했다가 뒤늦게 서두르는 못된 근성이야말로 게으름의 표본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점점 할 말이 없어진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저자는 우선 W.F. 오그번이 언급했던 문화지체(cultural lag)에 주목한다. 현대사회에서 사회경제적 환경과 정신문화의 변화 사이에 속도 격차가 커지면서 문화지체가 발생하는데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바로 ‘ACE정신능력’, 즉 자각능력(Awareness Power), 창조능력(Creative Power), 실행능력(Executive Power)이라는 것이다.
정신능력을 향상시킨다고 곧바로 게으름을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니다. 더구나 정신능력이라는 것이 그리 쉽게 향상되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삶을 대하는 긍정적 태도와 자신의 삶에 대한 지속적인 성찰이다.
최준영
전 경희대 실천인문학센터 교수, <유쾌한 420자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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