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잎이 햇빛에 반짝이면 종달새는 노래하네.” KBS 2TV ‘해피선데이 - 남자의 자격’ 청춘합창단 오디션에서 바로 이 아일랜드 민요를 불러 모두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 노강진 단장(84, 강남구 청담동). 고령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음정과 박자를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청춘합창단 결성 취지에 꼭 맞는 참가자라는 평가를 받으며 당당하게 합격을 했을 뿐만 아니라 40명의 최종 합격자들 중 최고령 단원으로서 단장 역할까지 맡게 됐다. 인생의 황혼기에 우연히 찾아온 행운 때문에 하루하루가 그저 고맙고 행복하기만 하다는 노강진 단장을 만나 멋진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감기 때문에 실력 발휘 못해 아쉬웠던 오디션
노 단장은 처음 방송국에서 합창단 서류심사에 합격했다는 전화가 걸려왔을 때만 해도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라 의아해하면서 그냥 끊어버렸다. 그러다가 노래를 좋아하는 자신을 위해 작은아들 내외가 몰래 신청을 했다는 말을 들은 후에야 사실을 알게 됐다. 비록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에 1차 합격을 했다는 사실이 기쁘기는 했지만 막상 오디션을 보기가 망설여졌다. 그렇지 않아도 나이가 많아서 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던 차에 오디션을 앞두고 여름 감기까지 걸려 걱정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노 단장은 “심사위원들에게 감기에 걸렸다고 미리 말했더니 괜찮다고 해서 노래를 부르기는 했는데 평소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것 같아 너무 아쉬웠다. 긴장되기는 했지만 평생 노래를 해온 덕분에 다행히 떨리지는 않았다”라며 그때를 회상했다.
감기에 걸린 상태에서 발성연습도 없이 노래를 부르느라 다소 음정이 불안하기는 했지만 합격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렸다. 결국 최종합격을 알리는 전화를 받았고, 그 순간 노 단장은 나이가 여든이 넘는 단원이 더 있는지부터 물었다. 그런데 자신이 유일한 80대이자 최고령자라는 것이 아닌가. 그때부터 아들, 딸 같은 젊은이들과 어떻게 함께 할지 염려스러워 밤에 잠이 안 올 정도였다. 청춘합창단 참가 자격은 1960년 이전 출생자(52세 이상)들이었고 단원들의 평균연령이 62.3세이니 노 단장에게는 그들이 젊은이들로 보일 수밖에.
평생 노래와 함께 하다 보니 찾아온 행운
방송이 나가자 국내는 물론 미국이나 독일, 호주 등 해외에 있는 지인들까지 축하 전화를 걸어왔다. 게다가 요즘은 어딜 가나 사람들이 얼굴을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하니 그야말로 스타가 따로 없을 정도다. 요즘 노 단장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가득한 이유이다.
사실 노 단장에게 이런 행운이 찾아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60여 년간 교회 성가대 활동을 한 것은 물론 나운영합창단과 YWCA연합합창단을 비롯해 다양한 합창단에서 활동하는 등 평생을 노래와 함께 해왔을 뿐만 아니라 52세에 기독교음악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을 정도로 노래에 대한 열정이 강했다. 바로 그런 열정이 있었기에 비록 다소 늦게 찾아오기는 했지만 청춘합창단 참가 기회를 인생 최고의 행운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너무 행복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왕 이런 기회를 주실 거 조금만 일찍 주셨으면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노 단장은 이렇게 행복한 욕심을 부려보기도 한다.
한 번 시작했다 하면 끝까지 해내는 끈기와 부지런함도 노 단장의 강점이다. 합창 연습을 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일주일 내내 하루도 쉬지 않고 다양한 활동을 하다가 밤늦게 귀가한다. 동네 인근 복지관에서 합창반이나 동요반, 하모니카반 등 음악과 관련된 프로그램이라면 모두 섭렵을 했고 ‘시 사랑반’ 수업을 듣다가 회원들끼리 시집을 내기도 했다. 교회 중국어반에서 10년 넘게 공부를 한 덕분에 복지관 중국어 수업 시작 전에 중국 노래를 가르쳐 주는 역할도 했고 일어반에서는 일본 노래를 가르쳤다.
단원들과의 소중한 인연 계속 이어가고 싶어
청춘합창단은 지난 8월 27일~28일 열린 ‘KBS 전국민 합창대축제’ 서울지역 예선을 통과했다. 각자 저마다 절절한 사연이 있는 단원들이었기에 예선에서 그 어느 팀보다 감동적인 하모니를 이루어낼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노 단장은 마지막 하이라이트 부분의 솔리스트로 나서 감동을 더했다. “김태원씨가 만든 ‘사랑이라는 이름을 더하여’라는 곡의 마지막 솔로 부분은 짧지만 그 곡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너무 부담스러워 사양을 했지만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라’는 윤학원 선생님의 말씀에 떨면서 불렀는데 좋은 결과를 얻어서 기뻤다.”
노 단장은 9월 24일 본선을 앞두고 맹연습 중인 청춘합창단의 분위기를 한마디로 “사랑이 넘친다”라고 표현했다. 늦게나마 노래에 대한 꿈을 펼칠 수 있어서 그저 행복한 단원들, 따뜻한 말 한마디와 배려를 아끼지 않는 지휘자 김태원씨, 노래지도를 맡은 박완규씨와 임혜영씨 등 모두가 똘똘 뭉쳐 또 다른 감동의 순간을 준비하고 있다.
“비록 두 번째 곡인 ‘아이돌 메들리’가 너무 빠르고 가사도 어색한데다 율동까지 곁들이느라 고생을 하고 있지만 잘 될 거라고 믿는다. 대회가 끝나면 청춘합창단은 해체가 되겠지만 단원들 모두 너무나도 소중한 인연을 어떤 식으로든 이어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사진 김태헌 작가(스튜디오 세가)
장은진 리포터 jkumeu@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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